代 잇는 아들의 손길 하회탈 할아버지 웃었다
노신사의 손을 거치자 투박한 나무토막은 점차 희로애락을 드리운 사람의 탈이 되어 갔다. 그의 모습을 똑 닮은 한 청년도 그 옆에서 조각칼로 모양을 낸다.
공예품에도 대량 생산, 수입품이 넘쳐나는 시대에 신정철 씨(63)는 45년째 묵묵히 한 길만 걸은 목공예 장인이자 국내 유일한 전통 탈 전승자다. 이제 그의 뒤를 아들 민웅씨(39)가 이으려고 한다.
단순히 가업을 물려받는 게 아니라 문화를 지키고 계승해 새로운 문화를 지켜나가겠다는 각오도 엿보였다. 청년 소상공인 가업승계 우수업체로 아버지의 과거와 아들의 미래가 함께 새로운 이야기를 빚어내는 서진공예(고양시 덕양구)를 찾아가봤다.
■ 탈 전승자 아버지의 가업을 이은 아들, 자부심은 한결 같아
한파가 매섭게 몰아친 지난해 12월의 어느 날, 서진공예 작업장은 어김없이 신 씨 부자가 작업에 여념이 없었다. 이곳이 문을 연 것은 지난 1998년.
신 씨는 지난 1987년 방 두 칸짜리 가운데 한 칸을 작업장으로 내어 이름을 붙인 ‘이랑공예’에서 사업을 시작해 화재로 지금의 서진공예로 문을 열게 됐다.
중학교를 졸업한 이후 10대 시절 무작정 서울로 상경해 조각공방에서 일하던 신 씨는 그 길로 공예에 평생을 바치게 됐다. 전통을 지킨다는 자부심이 컸지만, 생계는 늘 만만치 않았다.
공예에 대한 인식도 예전에는 좋지 못했다. “이제는 공예도 장인이다 뭐다 하며 대우를 해주지만, 옛날에만 해도 인식이나 대우가 많이 안 좋았죠. 당시 함께 일하던 기술이 좋던 친구들도 진작에 다 관두고 배 선장을 하거나 택시기사로 전향했어요.”
두 칸짜리 방에서 한 칸은 늘 작업장으로 사용하고, 직원은 하청 작업을 제외하면은 그의 아내와 아들이 전부였다. 어려움도 많았지만, 공예에 정성을 쏟으며 매진하다 보니 어느새 신 씨는 장인으로 불렸다.
혼인 기러기와 각종 전통 탈을 제작하는데 서문시장, 국제시장, 남대문 시장 등 전통시장 목공예 상품 판매점과 안동 하회마을에 판매된다. 단순히 수입과 판매에도 목적을 두지 않고, 우리 문화와 전통을 이어나가는 데도 열정을 쏟았다.
문화재수리기능사를 땄을 뿐만 아니라 지난 2013년에는 잊혀가는 전통을 잇고 보존하고자 국가에서 지정하는 탈 전승자로 선정됐다. 한 분야에 단 한 명만 전승자가 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하회탈, 처용탈, 구파발 탈 등 국내 탈의 40%가 신 씨의 손끝에서 탄생한다. 국립민속박물관에 있는 각종 탈의 표본도 대부분 신 씨의 손길을 거쳤다.
판매하는 공예품도 어느 것 하나 쉽게 만들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역사와 내용을 소비자가 알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게 신 씨의 지론이다. 그래서 그가 만든 기러기 목공예품에는 날개와 깃 하나하나에도 모두 의미가 담겨 있다.
혼인 기러기에 그러진 날개는 기러기들이 우두머리와 함께 따라가는 형상으로 그려졌다. 가장이 가정의 중심이 돼 함께 협동심을 키우며 해 나가자는 뜻을 담았다. 넝쿨에는 번성과 번창의 의미를 담았고, 머리를 소통의 의미를 담아 소비자나 외국인이 의미를 알고 사갈 수 있도록 한다.
공예에 몰두하며 지내던 신 씨는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마음이 급해졌다. 전통 탈을 보존하고, 이으려면 부지런히 표본을 제작해야 하는데 도통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봉산대, 별산대 등 지방 탈만 해도 180여 종에 달한다. 마땅한 계승자는 없고 그렇다고 먹고사는 문제를 제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때 마침 아들 민웅씨가 가업을 잇겠다고 나섰다. 군대를 제대한 이후 경복궁에서 수문장으로 일하던 민웅씨는 원래 가업을 잇는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수입이 뻔했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탈이나 혼례 기러기, 오리 목공예 이런 걸 과연 누가 사갈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대 이후 일한 곳도 경복궁이고,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일을 도우면서 어쩌면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서른두 살이 되던 해 민웅 씨는 아버지의 가업을 잇겠다고 결심했다. 어릴 때부터 집이 작업장이었고, 아버지가 정성스럽게 공예품을 만드는 걸 보고 자란 탓에 기술을 익히는 것은 빨랐다.
아버지가 평생을 바쳐 일궈 온 기술과 정신을 잇는다는 것도 그에게 새로운 동기를 불러 일으켰다. 이제 30여 년째 사업을 이어온 정철 씨의 곁에는 이제 그의 아들 민웅씨가 함께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간판이 바뀌고 기계도 현대화됐지만, 공예품과 가업에 대한 자부심은 한결같다.
이제 신 씨의 손기술을 빨리 터득하려 민웅씨는 작업이 끝난 이후에도 매일 밤 1~2시간씩 칼을 잡으며 연습한다. 나무를 비누처럼 다루는 아버지의 솜씨를 따라가려면 한참은 멀었지만, 묵묵히 가업을 배우며 이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신 씨가 샘플을 만들고 조각을 하면, 아들 민웅씨는 나무를 들여오고 1~2년간 적재해 말린 후 잘라서 기계에 넣어 샘플의 모양을 본뜬다. 이후 백골로 만들어서 사포로 연마하고, 포장하는 작업을 한다. 이 작업에는 부자뿐만 아니라 신 씨의 부인과 민웅씨의 부인도 함께 작업을 한다.
아직 아버지의 솜씨를 따라가기엔 갈 길이 멀지만, 민웅씨는 아버지가 닦아놓은 길에 자신만의 색을 더하고 있다. 그가 우선 시작한 것은 교육사업이다. 공예에 대한 스펙트럼을 넓히고, 대중에게 쉽게 다가가고자 서울 북촌 한옥마을에서 체험과 교육을 할 수 있는 목공예 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 처음으로 시작한 이 사업은 ‘계승자와 함께하는 목공예 수업’으로 외국인과 직장인 등에게 호응을 얻으며 교육생이 늘어나고 있다. 단순히 공예작품을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 전통 탈에 대한 이야기와 공예품에 대한 설명을 깃들여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도 높이도록 하고 있다.
그의 바람은 아버지의 손기술을 마스터 하고, 우리의 전통문화를 현대에도 계속해도 꽃피워 나가는 데 도움이 되는거라고 한다. 새로운 목표도 생겼다. “여행을 하다가 식당이나 관광지에서 아버지께서 만드신 탈이 걸려 있는 것을 보면 무척이나 반가웠어요.
우리 아버지가 하시는 일이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문화 계승을 위해 꼭 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이제 제가 만든 상품과 디자인도 아버지의 작품 옆에 나란히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민웅 씨를 바라보는 신 씨 역시 같은 마음이다.
신 씨는 “전통은 전통대로 이어나가 돼, 시대와 현실에 맞는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내길 바랄 뿐”이라며 “가업으로 전승하겠지만, 제조도 요즘 트렌드에 맞춰 확장해 나가면서 작품에 대한 고정관념 없이 자신만의 길을 찾아나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제 가업 승계를 준비 중인 서진공예는 민웅씨 뿐만 아니라 그 뒤를 이어 3대가 함께하는 기업이 될 가능성도 생겼다. 아홉 살 난 민웅씨의 둘째 아들이 벌써 자신만도 목공예를 하겠다고 공공연하게 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업 승계를 준비하며 새로운 자신만의 길도 찾아가겠다고 말하는 민웅씨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아직은 아버지의 일을 배우면서 시작해 나가고 있지만, 가업은 물론 전통을 잇는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매진할 겁니다. 아버지께서 걸어오신 길이 더 빛나도록 아버지의 정신을 잘 이어나갈 뿐만 아니라 저만의 길도 새롭게 개척해 나가면 전통과 가업을 발전시켜 나갈 거라 믿습니다. 지켜봐 주세요.”
정자연기자
사진=전형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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