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전통 문화유산… 세계시장서 통할 강력한 무기”
“전통의 씨앗을 키워 문화융성의 판 위에 활짝 피워내는 것.
이것이야말로 새로운 창조를 가능케 하는 진정한 힘입니다” 60년대 양딸의 눈을 멀게 한 아비의 한(恨)은 득음(得音)이라는 궁극의 경지(境地)를 얻었다. 영화 <서편제>는 고(苦)와 한(恨)의 애통함을 판소리라는 전통유산에 태웠다. 2017년을 맞은 오늘. 우리 문화의 궁극의 경지는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을 가슴 떨리게 해줄 문화계의 거목, 문화관광부 장관까지 지낸 김명곤 동양대 예술대학 학장(세종문화회관 이사장)과 대학로 동양예술극장에서 만났다.
지난해 12월16일 인터뷰 당일, 경북 안동 로케이션 현장서 막 올라왔다는 김명곤 학장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면서도 카메라만 돌아가면 자연스레 ‘꾼’으로 돌변하며 전통과 새로운 문화의 힘을 이야기했다.
-현대의 삶과 문화란 창조의 경지를 얻는 자양분을 기르는 데 한 알의 밀알(씨앗)의 역할. “죽을 때까지 연희판 서 뛰겠다”며 스크린TV무대행정경영 등 다채로운 분야에서 롱런 비결은.
연극무대는 창조의 씨앗이다.
제 삶 자체가 연극적이다. 서울대서 독문학을 전공했다. 서양문학·음악·연극을 공부한 예술학도에서 전통의 연희꾼으로 길을 밟은 것은 유명세도 아니고, 부(富)를 위한 것도 아니고, 예술의 본질을 찾아 떠나는 구도의 여정이었다. 결국 예술의 본질이 연극 속에 있고, 창조의 씨앗이 들어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나무를 기르는 법을 알자 숲을 키우는 눈이 생기는 것처럼 창조의 씨앗을 키우자 문화산업융성이라는 문화의 ‘판’이 보였다. 극단 <아리랑> 창단(1986~1999년) 대표로서 또 문화의 안팎서 살림까지 맡다 보니 국립중앙극장 극장장(2000~2005년)·제42대 문화관광부 장관(2006~2007) 재직까지 주어진 역할에 최고의 연희로 답했다.
하지만 결국 창조산업을 일으키려면 창조의 씨앗이 곳곳에 퍼져야한다는 진리는 불멸하다. 그래서 예술의 자생력(뿌리)을 길러 현장에서 문화의 힘을 키워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반짝스타가 넘치는 문화·예술 생태계서 대중의 사랑과 맞닿는 꼭지점을 찍는 길이다.
-문화관광부 장관 재직 시절, 전통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며 전통예술진흥 10개년 개발법 제정을 주창했다. 경제살이가 팍팍한 우리에게 전통은 어떤 힘으로 작용하는가.
문화는 힘든 세상살이에 희망을 안겨준다. 삶을 살아가는 희망과 꿈 없이 대체 어떻게 각박함을 이기고,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려 주먹을 불끈 쥘 수 있나. 영화 <서편제>(임권택 감독·1993년 作) 촬영 시절이 떠오른다.
그저 아마추어로서 영화의 완성도를 높인다는 생각에 철없이 뛰어든 소리판. 고(故) 박초월 국악인(1917년~1983년)과의 인연은 단순한 만남 그 이상의 감흥이었다. 한국의 소리와 멋 그리고 흥까지 사랑했다. 전통의 힘을, 문화의 불씨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도 그때부터 깊게 박혔다.
그래서 정책을 콘트롤할 수 있는 장관 자리에 올라 의욕적으로 퇴색하는 전통 관련 출구를 뚫어야겠다는 생각에 한국의 문화정책을 총괄하는 문화관광부에 전통 관련 전문부서를 신설했다.
하지만 임기를 내려놓자 전통은 또다시 유물에 묻혔다. 그런 의미에서 경기도의 대표 수장, 경기지사의 한류를 바라보는 시각 또한 다르길 바란다. 한류라는 루트를 타고 한국의 전통과 본질을 소개하고 알리는 데 투자를 해야 한다.
전통문화 콘텐츠야말로 세계시장서 승부수를 띄울 강력한 무기라는 생각으로 문화정책을 비롯 기획·마케팅·인재양성을 직선상에 놓고 투자할 때 비로소 경기도의 혼과 맥은 유·무형 유산 속에서 튀어나와 오늘의 문화현장서 뛰어놀며 문화인들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살아 숨 쉬는 유기체가 될 수 있다.
경기천년이라는 게 새로운 역사·문화적 도약의 포인트가 될 수 있다. 천년의 역사 속에서 오늘날의 경기도의 문화·역사자산으로 무엇을 꼽을 것인가에 대한 남다른 고민이 필요하다. 일례로 전라도 지역은 백제 고도 등을 포인트로, 신라는 경주 천년의 역사를 현대에 되살리고 있다. 역사에 묻힌 역사문화 콘텐츠를 현대·대중화할 것인가는 이런 점에서 중요하다.
한양(漢陽)을 중심으로 한 경기지역의 전승되어 온 전통문화(무형문화재)에 대한 재조명과 재발굴 등의 작업이 활발히 이뤄져야한다. 춤의 고장(양주별산대놀이)·음악의 고향(경기민요) 등 지역별 분포된 경기도의 특성을 매겨, 10대 전통문화 콘텐츠 등 시나리오를 짜야한다.
이후 경기도를 대표하는 문화 브레인을 모아놓고 장기계획 보고서 등을 만들어 전통과 현대를 아울러 활발한 의견을 교류로 판을 만들고, 특히 각 도·시·군의 지도자 및 행정 담당자에 대한 제안과 만남의 장을 통해 강력한 경기도의 새로운 정책으로서 틀을 잡아 예산문제 등 실리적인 고민을 해결할 때 비로소 新경기 문화 콘텐츠 산업이 오늘날 살아숨쉬는 유기체로서 도민의 삶속에 파고들 수 있을 것이다.
-요즘 학생들 가르치는 재미에 푹 빠졌다는 소문이다. 동양대학교(북서울 캠퍼스) 및 동양극장과 인연은.
학생들에게 인기는 없다(웃음). 상근하는 교수직은 아니고 상징(symbol)적인 자리다. 하지만 작품 창작수업에는 적극 참여한다. ‘티칭’(teaching )보다 ‘코칭’(coaching)이 교육철학이다. 젊은 학생들을 바라보면 역동적인 신선한 에너지를 느낀다. 작품을 진지하게 해석하고 젊은 시각으로 소화한 무대는 늘 설렌다. 그래서 창조의 힘이 샛 솟는 ‘극장 무대’(stage)는 중요하다. 문화의 향 그윽한 이곳 동양극장도 최성해 총장의 문화교육 마인드로 태어났다.
경북 영주(풍기)에 소재한 동양대서 총장과의 담화를 통해 석좌교수 프러포즈를 받고 연극영화과 발전에 대한 고견을 들었다. 그 자리서 제안한 것이 학생들의 중앙무대가 필요하다. 문화의 융성지, 대학로 소극장이면 좋겠다. 연습도 하고 발표로 관객과 호흡하며 창조적인 문화 인재를 육성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랬더니 몇 년 뒤 대학로에 동양예술극장(전신 동양극장 인수)을 동양대서 인수해 운영했다.
더불어 ‘연극영화과-디자인학과’ 등 예술과 관련된 학과 통합해 예술대학을 만들자는 대학의 마인드에 따라 현재까지 예술대학 학장을 맡아 지난 2015년 개교한 동두천(북서울) 캠퍼스서 영상·공연학부 등 200여 명 학생의 문화역량을 키우는데 학과 교수진과 함께 노력하고 있다.
-올해는 붉은 닭의 해(丁酉年)다. 꼿꼿한 품새로 새벽을 깨우는 닭의 기운빨을 받으려는 올해 열망도 크다. 경기도민과 본보 애독자에게 기운찬 신년 메시지를 전해달라.
지난해 나라에 대한 걱정, 불안, 분노의 민심이 출렁이는 한 해였다. 올해는 이런 흐름이 새로운 후보와 새로운 정권을 맞이해 우리나라가 앞으로 도약하는 데 중요한 변화를 맞는 한 해가 되길 바라마지 않는다.
마침 붉은 닭의 해. 우렁찬 닭소리처럼 우리나라의 기운이 힘차게 뻗어갔으면 좋겠고, 태양과 같은 붉은 뜨거운 열정과 에너지로 새롭게 도약하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아울러 경기일보 애독자 여러분의 가정에도 기운찬 희망을 기원하고, 도민 여러분의 앞날과 미래도 더욱 발전하고 힘차게 나아가시길 바란다.
김명곤 학장은…
△1971년 전주고등학교 졸업
△1976년 서울대학교 독어교육학과 졸업
△2015~2017 동양대학교 예술대학 학장
△2015. 3.6~2017 세종문화회관 이사장
△2006.03~2007.05 제42대 문화관광부 장관
△2000.01~2005.12 국립중앙극장 극장장
△1998.03~1999.12 전국민족극운동협의회 의장
△1986~1999 극단 아리랑 창단대표
△1978~1979 배화여자고등학교 교사
△1977 뿌리깊은나무 기자
△주요작품
-연극 <상록수1975년>, <배꼽춤을 추는 허수아비1995년>, <어머니1996>, <격정만리2006년>, <경성에 딴스홀을 허하라2009년>, <마법의 동물원2009년>, <아버지2012>, <아빠 철들이기2015년>
-영화 <바보 선언1983년>, <과부춤1984년>,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1987년>, <꼭지딴1990년>, <서편제1993>, <영원한 제국1995년>, <명량2014년>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1995년>, <까르페디엠2011년>
-TV 드라마방송 <대왕 세종KBS22008년>, <각시탈KBS2012년>, <왕의 얼굴KBS2014년>, <밤을 걷는 선비MBC2015년>, <추적! 사건과 사람들SBS1996년>
-국악공연 <민족의 소리 한마당1996년>, <금수궁가2016년>
권소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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