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천년 성장 동력을 묻다] 이해인 수녀

“모진풍파 이겨낸 동백꽃처럼… 희망을 꽃 피우세요”

겨울에 피는 동백꽃을 따스한 눈빛으로 사랑하고 있는 이해인 수녀를 부산에서 만났다. ‘작은 위로, 작은 기쁨, 작은 기도’라는 자신의 시집처럼 남은 생에 위로 천사와 기쁨 천사가 되고 싶다고 소망했다. 또한 그녀는 “먼저 웃고 먼저 감사하고 먼저 사랑하자”고 지쳐있는 국민들을 위해 기도했다. 오승현기자
겨울에 피는 동백꽃을 따스한 눈빛으로 사랑하고 있는 이해인 수녀를 부산에서 만났다. ‘작은 위로, 작은 기쁨, 작은 기도’라는 자신의 시집처럼 남은 생에 위로 천사와 기쁨 천사가 되고 싶다고 소망했다. 또한 그녀는 “먼저 웃고 먼저 감사하고 먼저 사랑하자”고 지쳐있는 국민들을 위해 기도했다. 오승현기자
동백꽃. 이해인(72) 수녀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다. 

동백꽃은 겨울 추위를 뚫고 꽃망울을 터뜨려 ‘봄의 전령사’로 불린다. 거센 칼바람과 눈발 속에서도 붉은 자태를 뽐내며 고고하게 피어나 ‘희망’을 상징하기도 한다. 지난해 12월29일 부산 성베네딕도수녀원에서 만난 그는 정원에 핀 동백꽃을 바라보며 “꼭 지금 우리나라와 닮아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모진 풍파를 겪고 있지만 한 송이 동백꽃처럼, 또 다시 희망이라는 꽃을 피울 수 있다는 그의 바람이 간절하게 묻어났다. 2017년 새해가 밝았고, 절망만 하기에는 떠오른 해가 너무 붉다. 동백꽃 같은 이해인 수녀의 희망메시지를 들어보자.

-요즘 건강은 어떠신지.

오늘도 편지를 받았다. 미국에서 ‘지난해 이맘때 돌아가셨다는 헛소문 듣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며 돌아가신 게 아니라 감사하다’는 내용이었다. 몇 달에 한 번씩 반복적으로 이런 소문이 난다. 독자들이 너무 힘들어 한다. 건강에 대한 소문 덕분에 귀한 사람이 된 것 같다.

 

올해 72세다. 70대에는 건강한 사람도 힘이 빠지는데, 암환자로 8년을 투병했기 때문에 더 신경써야 한다. 그간 불면증이 심했다. 에너지가 많이 소모된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그 전에는 사람들을 만나도 끄떡없었는데, 이제는 힘이 든다. 나이가 주는 어떤 것이 있다. 지난해는 대상포진과 통풍을 몇 차례 앓으면서 통증을 경험했다. 일상생활에는 지장이 없지만, 면역력은 많이 약해진 것 같다. 하지만 얼굴은 망가지지 않으니 아픈 사람 같지 않다고들 한다.

 

-수녀원 내 해인글방에서 문서선교도 꾸준히 하고 있다.

손 편지를 보내는 사람들이 많다. 정성에 감사하다. 그런 분들께 직접 답장을 드리고 있다. 그때그때 못해줘도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에는 때가 때이니 만큼 더 신경쓰고 있다. 일일이 소식을 전하는 것이 힘들 때도 있지만 직접한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누구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는 정성이 필요하다. 기쁜 마음으로 답장을 보내고 있다.

 

-나라가 시끄럽다.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너무 답답하다. 이런 세태를 지켜본다는 것이 우울할 뿐이다. 정치인이든 나 자신이든 우리 모두의 잘못은 자신이 실수한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마음이다.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해야 하는데 잘 안 되는 것 같다. 특히 높은 자리에 갈수록 그렇게 해야 하는데 안타깝다. 좋은 정치 지도자가 되려면 행동으로 먼저 솔선수범을 보여야한다. 자신과 다른 의견이라도 잘 듣고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하지만 내 마음을 기쁘게 하는 사람을 자꾸 편들게 되고 편애하게 되지 않나. 사실 이번 같은 경우도 어떻게 보면 인간이 약하니까, 치우치게 되는 것들 때문에 일을 그르치게 됐다. 

마음수련과 마음돌봄이 필요하다. 남을 비난하고 탓할 때도 마찬가지다. 남을 충고하고 지적할 때도 격이 있고 품위 있는 말을 사용해야 한다. 너무 인신공격적인 비난이 아닌 정제되고 세련된 언어사용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정치판은 애들 볼까 민망한 장면이 너무 많다.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부끄럽다.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있지만 ‘기도가 힘이 없나보다’는 생각을 한다. 

국민의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가 우리가 꿈꾸는 나라인데, 왜 안 될까라는 고민이 있다. 북한 핵실험을 걱정했더니, 우리도 못지않게 위기를 맞았다. 이 와중에도 희망이 있다면 이것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상처를 치유하고 거듭나는 계기로 삼자는 것이다. 머지않아 ‘그때 그 고통이 필요했었다’는 말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 우리는 반만년 역사동안 수없는 역경을 모두 이겨낸 자랑스런 대한민국 국민이다. 지난날 비록 아픈 상처가 생기기도 했지만 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 우리는 점차 강해졌다. 2017년 정유년 (丁酉年)에는 위기를 넘어 새로운 역사와 미래를 창조하기 위해 힘을 모아 전진하자. 그리하여 모진 풍파에도 우뚝 설 수 있는 대한민국을 만들자.(강릉시 헌화로 드론 촬영) 오승현기자
▲ 우리는 반만년 역사동안 수없는 역경을 모두 이겨낸 자랑스런 대한민국 국민이다. 지난날 비록 아픈 상처가 생기기도 했지만 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 우리는 점차 강해졌다. 2017년 정유년(丁酉年)에는 위기를 넘어 새로운 역사와 미래를 창조하기 위해 힘을 모아 전진하자. 그리하여 모진 풍파에도 우뚝 설 수 있는 대한민국을 만들자.(강릉시 헌화로 드론 촬영) 오승현기자

-대선이 있다. 어느 때보다 신중한 선택이 필요할 것 같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기준이 어질고 착한 것만 가지고는 안 된다. 리더십이 있으려면 지혜와 덕목이 필요하다. 선택을 할 때, 내 지역구 내 고향 사람을 벗어났으면 좋겠다.

 

사적인 감정은 냉정하게 배제하고 객관성을 봐야하는데,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이 작은 나라에서 그게 고쳐지지 않는 것 같다. 국민성 자체가 정에 치우치다보니, 리더에게 공과 사를 구분하지않고 기대하는 것도 문제다. 자신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사적인 감정을 빼놓고 보편적인 기준에 따라 리더를 뽑아야 한다. 

나라가 마음에 안 들고 리더가 마음에 안 들면 입버릇처럼 ‘이놈의 나라 떠나고 싶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우리 모두가 공동책임을 지고 해결해야 한다. 밉든 곱든 내가 태어난 나라가 아닌가. 나 하나만의 사리사욕을 채우고 이기적으로 살기에는 세상이 너무 달라졌다. 그 전에는 가난하더라도 깊이가 있었다. 요즘은 너무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삶을 산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세상에 살고 있는 만큼 정신적으로도 풍요롭고 성숙해져야 한다.

음식만 하더라도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다 먹을 수 있지 않나. 내 몫을 아껴서 끼니를 굶는 사람들을 챙기고, 나보다 남을 더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실생활에서 작은 것이라도 나누는 삶을 살면, 겸손해지지 않을까. 욕심과 탐욕과 교만이 지금의 화를 불러온 것 같다.

 

-최근 그간 안했던 강연도 하고, 산문집부터 시가 담긴 달력 등을 펴냈다.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었는지.

강연은 건강상의 이유로 한동안 안했었다. 지난해부터는 의미 있는 곳, 그늘진 이웃이나 아프고 소외되고 정신정인 격려가 필요한 곳에서 강연을 했다. 책도 마찬가지다. 좋은 말들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 가장 최근 펴낸 <모든 순간이 다 꽃으로 필 거예요>는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시집이다. 그간 시에 들어간 글귀들을 모아 만들었다. 인생과 삶에 대한 감사와 희망 등이 담겨 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해 달라.

누구나 힘들 때 꺼내 볼 수 있는 기도문집을 만들 계획이다.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마음이 지치고 힘들 때 위안과 용기를 얻을 수 있는 기도가 담긴 책이다.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씩 준비하고 있다. 남은 생은 작은 위로의 영성을 펼치며 살고 싶다. 

2002년부터 작은 위로, 작은 기쁨, 작은 기도라는 시집을 펴냈다. 그 시집에 담긴 시들처럼 모든 분들에게 위로 천사와 기쁨 천사가 되고 싶다. 건강을 회복하고 나서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감사는 더 깊어지고, 사랑은 더 애틋해지고 기도는 더 간절해졌다’는 말을 했다. 앞으로 더 사랑하고 기도하며 살 것이다.

 

-국민들이 많이 지쳐있다. 희망 메시지 부탁한다.

‘작은 소망’이라는 시 중에서 ‘한 톨의 시가 세상을 구원하진 못해도 사나운 눈길을 순하게 만드는 작은 기도는 될 수 있겠지’라는 구절이 있다. 사람들이 눈빛이 너무 사나워져 있다. 

올해는 사나워진 눈빛을 풀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봤으면 좋겠다. 남이 내게 해주길 바라는 선한 일을 내가 먼저 실천하고, 먼저 웃고, 먼저 감사하고, 먼저 사랑하자. 그러면 좀 더 아름다운 세상이 되지 않겠나. 

이해인 수녀는…

△ 1945년 출생

△ 1964 부산 성베네딕도수녀회 입회

△ 새싹문학상(1981), 여성동아대상(1985) 부산여성문학상(1998), 천상병 시 문학상(2007) 수상

△ 저서 <민들레영토>(1976), <엄마와 분꽃>(1992) <내 삶은 당신을 향해 흐르는 그리움입니다>(2000) <사랑할 땐 별이 되고>(2013), <이해인 시전집 12>(1997) <필 때도 질 때도 동백꽃처럼>(2014) <서로 사랑하면 언제라도 봄>(2015) 외 다수

 

송시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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