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사태 437만 마리 생매장 작업자들 정신적 고통 호소
“멀쩡히 살아있는 동물을 죽여서 묻어야 하는 그 고통은 안 겪어 보면 절대 몰라요”
조류인플루엔자(AI) 방역 이동통제초소에서 만난 A씨는 지난해 살처분 작업에 투입됐던 기억을 떠올리면 씁쓸하기만 하다. A씨는 “살처분은 사람으로 치면 살인과 다를 바 없다”면서 “그때 생각만 하면 지금도 속이 메스껍고 기분이 좋지 않다”고 토로했다.
AI 사태로 살처분 대상에 포함된 가금류가 경기도에서만 400만 마리를 넘어선 가운데 살처분 작업자들의 트라우마가 우려되고 있다.
8일 경기도와 방역 당국에 따르면 이날 밤 9시까지 8개 시ㆍ군 43개 농가 437만여 마리의 가금류(닭ㆍ오리ㆍ메추리)가 살처분 대상으로 지정돼 이날까지 총 300만여 마리에 대한 살처분 작업이 이뤄졌다. 살처분에 투입된 인력 2천400여 명 중 경기도 동물위생시험소 직원과 수의사 등 전문 인력은 500여 명이다.
나머지는 1천900여 명은 피해농가 혹은 피해기업 직원들로 살처분 작업 경험이 많지 않거나 처음인 경우가 대다수다. 때문에 멀쩡한 닭과 오리들을 살처분하는 작업 이후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상황도 발생하고 있다.
심지어 지난 2011년에는 구제역 살처분 작업에 투입됐던 충남의 한 축협 직원이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자살을 하기도 했다. 지난 2011년까지 살처분 작업에 병력을 지원해오던 국방부도 병사들이 트라우마에 시달린다는 항의가 이어지자 인력 지원을 중단했다.
이런 가운데 경기도는 매년 6월부터 8월에 걸쳐 ‘구제역ㆍAI 방역활동 참여자 힐링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살처분 작업자들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치료하기에는 역부족으로 지적됐다. 단발성으로 이뤄지고 있는데다 지역에 따라 AI나 구제역 종식 일자가 제각각인데, 6월까지 일괄적으로 대기하다 프로그램 지원을 받는 등의 엇박자가 나고 있기 때문이다.
박병관 한국심리자문연구소장은 “매몰 당시의 장면이 떠올라 고통스러워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면서 “스트레스 경감 프로그램 등을 적극 시행해 이들의 고통을 완화해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도 관계자는 “살처분 작업자들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치유하기 위한 지원이 조금 부족한 것은 사실”이라며 “향후 도 지정 병원 등과 연계해 정신과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등 여러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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