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수석에는 문외한이라서 별 느낌이 오지 않는다고 했더니 그분은 더욱 열심히 설명을 한다. 움푹 파인 쪽을 가리키면서 이쪽의 기암절벽과 절벽 끝에 고고히 서 있는 소나무를 보라는 등, 실선 하나를 가리키면서 이 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가 들리지 않느냐는 등 작품에 대한 설명을 하지만 나에게는 별로 느낌이 오지를 않는다.
한참 설명을 듣고 나니 그럴 듯도 해 보이고 그런 것 같기도 했지만 역시 나에게는 수석을 보는 심미안은 부족하다. 사람은 모든 것을 보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이기 마련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단면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공처럼 둥글게 만들어져 있다. 또한 둥글게 만들어진 세상은 쉼 없이 자전과 공전을 하며 태양의 둘레를 돌고 있다. 때문에 세상의 구조는 이중적이며 또한 복합적이다. 이 세상은 낮이 있는가 하면 동시에 밤이 있고 아침이 있는가 하면 동시에 저녁이 있는 것이다.
계절의 변화도 이중적이며 동시에 복합적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지구 한 편에서는 한겨울을 지내고 있는가 하면 동시에 지구 반대편에서는 한여름을 지내기도 하고 한편에서는 한낮을 살아가는가 하면 또 한편에서는 한밤중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생을 살아가면서 세상을 단면으로 생각하기보다 이중적으로, 아니 복합적으로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세상을 광야라 했던가? 아니 고해라고도 했다. 세상은 여러 가지 일로 가득 차 있다. 보이는 것마다 어려운 일이고 들리는 소식마다 마음을 어둡게 하는 답답한 소식들이다. 국가적으로도 남북은 대치 국면이고 정치·경제·사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풀리는 것 없고 연일 크고 작은 재난과 사건, 사고의 소식들은 우리 마음을 더욱 불안하게 하고 근심하게 한다.
며칠 전 교우 한 분이 핸드폰으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남의 빚보증 잘못 서 큰 어려움을 겪고 난 후에 집까지 다 없애고 부부가 아들 하나 데리고 트럭으로 생선 장사를 하면서 어렵게 살아가는 가정의 가장이다. 날씨는 추운데 감기 몸살이 겹쳐 장사하기가 너무 힘이 들었던 모양이다. “목사님! 온몸이 쑤시고 곧 쓰러질 것만 같습니다. 잘 버틸 수 있도록 목사님 기도 좀 해 주십시오.” ‘얼마나 힘이 드셨으면…. ’ 코끝이 찡하다.
세상은 복합적이고 인간의 사고구조도 복합적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더없이 중요한 것은 ‘내가 어디에 서 있느냐’ 하는 것을 바르게 인식하는 것이다. 절망 앞에 서 있는 사람에게 밤은 더 큰 절망일 것이다. 두려움과 근심을 안고 사는 사람에게 새 아침, 새해, 새날은 더 큰 고통일 뿐이다. 그러나 소망 앞에 서 있는 사람에게 오늘은 내일을 위한 쉼의 은총이다.
그 사람에게 오늘은 미래를 향한 새로운 디딤돌일 것이다. 어둠이 짙을수록 새벽이 가까워 옴을 느끼며 한겨울은 만삭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봄을 준비하는 계절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서 있어야 할 곳을 바르게 인식하고 사는 것이야말로 중요한 삶의 지혜이다.
성경에는 희망을 잃고 비통해하는 백성에게 여호와께서 외치는 말씀이 있다.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렘29:11) 믿음으로 소망의 주님 앞에 서서 희망의 말씀을 가슴에 담아내자.
반종원 수원침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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