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진 땅… 上農의 지혜 흙 살리기는 농업 살리기
1969년 농협에 입사해 30여 년 동안 오로지 농촌 부흥만을 생각했다. 1997년에는 경기농협 최고 책임자인 지역본부장 자리에 올라 농촌의 근본인 ‘흙’을 살리고자 두 팔을 걷어붙였다. 그런 그에게 왜 그렇게 농촌에 애정을 쏟으시는 것이냐고 물었다. 빙그레 미소를 짓던 그는 “농촌을 부흥시키는 것이 나라를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했다”고 대답했다. 퇴임 후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은 그는 여전히 흙을 강조한다. 농민의, 농민을 위한, 농민의 의한 농촌을 위해서다. 40여 년 동안 농촌을 위한 외길을 걸어온 정진석(73) 전 농협중앙회 경기지역본부장을 서울의 한 작은 교회에서 만났다. 현재 흙 살리기 연대 고문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정 전 지역본부장으로부터 농촌과 흙 그리고 농협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농협을 떠난지도 20년 가까이 된다. 근황이 궁금하다.
A. 나름 봉사하는 일들로 바쁘게 지낸다. 흙 살리기 운동을 비롯해 강연·교육 등을 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고향인 안성의 사회복지협의회 고문으로서 사회복지사업을 도와주고 있다. 또 은암장학회를 설립ㆍ운영하면서 현재는 학생들 장학금 마련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Q. 흙 살리기 연대에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다.
A. 환경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눈다면 물, 공기 그리고 흙이다. 자연을 이루는 3요소라고도 하는데 개인적으로 그 가운데에서 흙이 모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 흙이 망가지고 있다. 산업화·공업화 사회가 되면서 도시에서 나오는 온갖 쓰레기, 공장폐수 등의 종착역이 흙이 되고 있다. 게다가 생활하수·축산폐기물 등으로 농경지의 오염과 황폐화를 가속화하는 물질이 증가하는 게 현실이다. 이런 상황이 되면 인류의 생존도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인류 문명은 강과 인접한 비옥한 땅에서 비롯됐다. 흙을 소중히 여기고 가꿔온 문명이 융성한 것도 사실이다. 그만큼 흙은 최후의 보루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온 국민이 나서 흙을 살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고, 그러기 위해선 국민의 의식운동부터 해야 한다고 봤다. 그래서 20여 년 전 흙 살리기 운동 조직을 사단법인으로 꾸려 운동을 시작했고 지금은 전국 규모로 펼치고 있다.
Q. 농협맨으로 생활해 온 점이 흙 살리기 운동을 하게된 이유가 된듯 싶은데.
A. 농협에서 근무한 것이 큰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농협에서 근무를 하면서 흙의 주인이 농민이란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퇴직 후 우리 농촌을 위해 봉사할 길을 찾았는데, 고심 끝에 흙 살리기 운동을 하게 됐다. ‘흙’은 농사가 시작됐을 때부터 중요시됐다. 예부터 우리 조상이 일컬어온 말 가운데 풀을 보기 전에 김을 매는 농사꾼을 상농(上農), 풀을 보고서야 김을 매는 농사꾼을 중농(中農), 풀을 보고도 김을 매지 않는 농사꾼을 하농(下農)이라고 했다. 즉 상농은 흙을 잘 관리하고, 중농은 필요해서 어쩔 수 없이 하고, 하농은 필요해도 안 하고 내버려둔다는 것이다. 이 말은 풀을 신속하게 없애 흙을 기름지게 하고 뿌리를 튼튼히 가꾸는 상농의 지혜를 강조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우리 농업을 살리는 비결 역시 근본인 흙 살리기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는 점에는 이의가 없다.
Q. 농협에서 근무하던 때가 궁금하다. 기억에 남는 일들이 많을듯 하다.
A. 1969년에 입사해 30년 넘게 농협에서 일했다. 내가 농과대를 졸업한 당시 우리 농촌은 상당히 피폐했다. 국민소득이 1인당 70달러가 안 되는 시절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농촌을 부흥시키는 것이 나라를 살리는 길이다라고 생각했고, 나부터 농촌운동에 참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농협에 들어가 일을 하게 됐다. 경기 농협의 책임자가 됐을 때도, 지금도 나는 우리 경기도가 대한민국의 핵심이자,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는 중심이라고 본다. 농협도 마찬가지다. 전국 농협의 중심이 우리 경기 농협이었다. 그런 우리 경기 농협이 농민들을 위해 봉사하고, 농민들을 위해서는 정말 살아있는 농협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온 경기 농협 임직원들과 함께 농협운동을 펼쳤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또 우리 경기농협이 대농민 지도사업을 함에 있어 임직원들이 영농기술분야가 취약해 농민들에게 적절한 기술지도와 영농상담을 할 수 없었던 점을 보완해 농가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한 것도 기억에 남는다. 당시 이를 위해 단위농협에 농촌지도사들이 상주했고, 농협을 찾는 농가들에 영농상담과 기술지도를 할 수 있도록 지자체, 농촌지도소 등 유관기관과 협의해 진행했다.
Q. 당시 직원들에게 강조했던 사항은 무엇인가.
A. 무엇보다도 흙을 살려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왜냐하면 농민들이 농사를 편안하게 짓고, 소득을 올리는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기반부터 만들어 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 시발점이 흙 살리기였던 것이다. 또 농민이 생산한 것은 제 값을 받고 팔아줘야 한다고 늘 얘기했다. 그 본을 보이기 위해서 매주 금요일 지역 본부 주차장에서 금요 장터를 열어 농민들이 직접 농축산물을 직거래할 수 있도록 하게 했다. 지역에서 생산된 농축산물을 직거래하니 도시민들은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우리 농산물 애용 촉진, 물가안정 기여, 판로확대 등을 통한 농업인 소득증대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었다. 그때 시작한 금요 장터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Q. 당시의 농협과 지금 농협은 많이 변했다. 직접 보시기엔 어떤가.
A. 주변 사람들만 해도 ‘농협이 너무 퇴색된 것이 아니느냐’는 걱정을 많이 한다. 하지만 나는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역사란 항상 발전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지 퇴보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농협이 현재 금융지주, 경제지주 등 주식회사 형태로 분리됐는데 이것도 발전의 양상으로 보고 있다. 이런 것을 통해 우리 사회 전체 구조가 변화되기 때문에 거기에 적응해 가면서 우리 농촌과 농업의 발전, 그리고 농민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최선의 시스템을 구축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농협금융지주가 분리되면서 부실경영 등 여러 말도 많았지만, 어찌 됐든 나는 현재 농협의 변화를 매우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Q. 지금도 농협퇴직동인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농협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신 것 같다.
A. 젊은 시절을 모두 농협에서 보냈으니까 어쩌면 당연한 것 아닌가. 우리 농협 동인들이 우리 경기도만 해도 수 천명에 달한다. 모두 현장에서 열심히 생활을 하시는 분들이고, 다들 건강하게 또 우리 경기도 발전을 위해 각자의 위치에서 농심을 가지고 평생 봉사하는 농협 동인들이 되길 바란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