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신에 대한 믿음은 인간의 본성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이러한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정말 어떻게 해서 있게 되었는가? 신은 존재하는 것인가? 죽은 다음에 어떻게 되는 것인가?’

 

이 철학적 물음에 대한 과학적 근거로 진화론과 빅뱅 이론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이론 자체도 역시 한계가 있다. 왜냐하면 두 가지 논리가 수학 공식처럼 답을 낼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역시 가설에 불과하다. 그래서 이러한 문제는 신앙으로 귀결된다.

 

일부 과학자들은 자기 나름의 신관을 갖고 있으면서 종교와 과학을 같이 생각하는 것이 삶과 세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종교 없는 과학은 장님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만큼 종교는 삶과 세계를 이해하는데 중요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무한한 절대자에게 돌아가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절대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자신을 맡기고자 하는 것은 우리 일상에 걸쳐 숨 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절대 확실하다고 하는 것(神)에 대한 믿음은 전쟁터에서 적이 나타났을 때 싸우거나, 도망치는 본능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인간의 마음이다. 이러한 본성이 신앙으로 이어진다.

 

신앙은 절대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절대자를 믿는 것이다. 그리고 믿는다는 것은 그 절대자에게 내어맡김이다. 젖먹이 아이에게 있어 어머니 품은 절대적인 사랑과 힘의 장소이다. 그래서 젖먹이가 그 품 안에서 아무런 걱정 없이 밝게 성장할 수 있는 것도 자기를 따뜻이 감싸주고 있는 어머니의 확실한 사랑을 무의식 중에 믿고 있기 때문이다.

 

5층짜리 아파트 1층에서 불이 났다. 5층의 한 집에 어머니와 어린 자녀 셋이 있었다. 그리고 불길이 1층에서 계단을 타고 그 집으로 올라왔다. 놀란 어머니는 창밖으로 구조해 달라고 소리쳤다. 이때 아파트 근처에서 이불 가게를 하던 주인이 이불을 잔뜩 들고 왔다. 주변 사람들도 이것을 보고 모여들었다.

 

사람들은 가져온 이불을 펼쳐 들고 그녀에게 말했다. “우리가 이불을 펼쳐들고 있을 테니 아래로 아이들을 던지세요. 그리고 당신도 뛰어내리세요” 어머니는 망설였다. 과연 ‘아이들과 자신이 뛰어내렸을 때 이불 위에 안전하게 떨어져 살 수 있을까?’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불길은 더 거세게 올라왔고,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되자 그녀는 결심한 끝에 아이들을 하나씩 이불 위로 던졌다. 이어서 자신도 뛰어내렸고 모두 살았다.

 

믿는다는 것은 젖먹이 아이가 어머니의 품에 온전히 의지하고, 불길에 싸여있던 그녀가 이불을 받쳐 들고 있는 사람들의 말을 신뢰하였듯이, 절대 확실하다고 하는 것(하느님)에 내어 맡기는 것이다. 따라서 신앙 안에서 모든 선의 원천이신 절대자를 발견해보기 바란다. 더없이 기쁘고도, 흐뭇한 체험이 될 것이다.

 

박현배 천주교 성 라자로마을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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