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경제] 황금을 만들 것인가, 챙길 것인가

이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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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과 애플 사이에 특허권 분쟁이 발생한 지 5년째다. 그 분쟁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잘 기억하진 못하지만, 소송의 결과로 나오게 된 천문학적 배상금의 규모는 많은 사람을 놀라게 하였다. 삼성과 애플의 이 분쟁은 많은 사람들이 지식재산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였으며, 특허 등 지식재산이 큰돈을 벌게 하는 막연한 재산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였다. 좋은 특허는 황금이 될 수 있다. 그러니 좋은 특허를 만든다는 것은 황금을 만드는 것으로 비유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황금을 만드는 사람이 반드시 그 황금을 챙기는 사람일까?

 

60대 이상 나이의 사람들 중엔 ‘삼손과 데릴라’라는 할리우드 영화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 영화는 1949년 세실 B. 드밀 감독이 구약성경 사사기에 나오는 이야기를 영화화한 것이다. 빅터 매추어(Victor Mature)가 삼손역을 맡았고, 데릴라 역은 헤디 라마(Hedy Lamarr)가 맡았다. 1914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출생한 헤디 라마는 1940년대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꼽힐 정도로 눈부신 미모를 지닌 배우였다. 그녀는 클라크 게이블, 스펜서 트레이시, 라나 터너와 함께 할리우드 영화판을 주름잡은 당대 최고의 여배우였다. 너무나도 관능적이고 유혹적인 데릴라의 아우라(aura)를 남긴 걸작 ‘삼손과 데릴라’를 정점으로 내리막길을 걷던 헤디 라마는 마흔네 살의 나이에 은퇴했다. 그녀는 여섯 번의 결혼과 이혼을 했으며, 2000년 마이애미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그녀는 영화배우로서가 아니라 발명가로서 지금의 경제규모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크기의 황금을 만들었지만, 말년의 생활은 경제적으로 그리 여유롭지 못했다.

 

그녀가 만든 엄청난 크기의 황금이란 무엇인가? 그녀가 오늘날 이동통신의 핵심기술인 ‘와이파이(Wi-Fi)’ 발명에 핵심적인 원천 특허의 발명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1942년 미국특허 229만2천387번으로 등록된 ‘비밀통신시스템(Secret Communication System)’이 바로 그것이다. 이 특허의 출원 당시는 세계대전 중으로, 어뢰 원격제어 등에 필요한 통신 방식이 고정 주파수를 이용한 것이라 적군에 송수신 정보를 탈취당하기 쉬웠던 점이 문제였다. 헤디 라마가 고안한 아이디어는 통신 주파수의 스펙트럼을 흩트려 탈취를 방지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특허 아이디어는 무작위로 피아노 건반을 쳐서 소리를 보내듯 어뢰에 88가지 주파수를 이용하여 제어 신호를 보내는 것이었다. 헤디 라마의 이 특허 기술은 훗날 케네디의 쿠바 봉쇄 시기에 군사무기로 개발되었으며, 오늘날 IT기술의 상징인 CDMA를 토대로 셀네트워크, 블루투스, 와이파이(Wi-Fi)에 녹아들었다. 하지만 이 기술은 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때까지도 군에서 채택되지 않았다.

 

헤디 라마의 위대한 공적은 1997년 들어서야 세상에 알려졌고, 그 해 미국 전자프론티어재단(EFF) 등으로부터 많은 과학 관련 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녀의 특허권은 1959년 만료돼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했던 그녀의 말년에 자신의 발명으로부터 어떤 이득도 얻지 못했다. 그녀는 상상도 못할 거대한 황금을 만들었지만 그 황금을 조금도 챙기지를 못한 것이다. 황금을 만든 사람이 될 것인가, 아니면 챙기는 사람이 될 것인가는 자신의 선택이다. 우리 사회는 이미 지식기반 경제체제에 접어든지 오래다. 지식재산에 대한 관심과 상식이 더욱 필요한 시기에 우리가 살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철태

단국대학교 화학공학과 교수·지식재산교육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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