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낙타에게 배우는 지혜

구미정.jpg
덥다. 더워도 너무 덥다. 지구가 펄펄 끓는다. 정상이 아니다. 우리 앞집도, 윗집도 줄줄이 에어컨을 달았다. 관악산 아랫자락 동네라 에어컨 없이 살아도 견딜 만했었는데, 올해는 도저히 못 참겠다. 과거에 없었던 여름이라더니, 정말 해도 너무한다. 2008년 우리나라에서 폭염특보제를 시행한 이래, 5월에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건 올해가 처음이란다. 작년만 해도 7월에 내려졌다는데, 두 달이나 앞당겨졌다. 역사상 가장 무더운 여름이다. 더 끔찍한 건 이 소리를 매년 듣고 있다는 사실!

 

여름은 계속 길어질 것이다. 그러면 에어컨을 사는 사람이 더 늘어날 것이다. 더우니까 에어컨을 켜고, 에어컨 때문에 더 더워지고, 그러니까 또 에어컨을 안 틀 수 없고, 그러니까 또 더워지고… 악순환이 꼬리를 문다. 변압기 과부하로 전기가 끊어지는 사고를 연일 접하면서도, 원자력 에너지에 의존하는 삶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문득 낙타를 떠올린다. 드넓은 모래사막을 배경으로 긴 눈썹을 휘날리며 먼 데를 응시하는 모습이 여유만만하다. 그 큰 몸집을 가지고 척박한 사막에서 살아간다는 게 영 신통한데, 비밀은 등에 붙은 혹에 있단다. 그곳에 지방을 가득 저장해 두어서, 아무것도 먹지 않고도 몇 달은 거뜬히 버틸 수 있다. 심지어 이 혹도 지역에 따라 개수가 다르다니, 얼마나 알뜰한 동물인지 모른다. 북아프리카와 서남아시아에는 단봉낙타가, 중앙아시아에는 쌍봉낙타가 산다.

 

 필요하지 않으면 굳이 더 가질 필요가 없다는, 잉여를 철저히 배제한 삶의 자세랄까. 원래 아메리카 대륙에서 살던 낙타가 왜 아시아로, 아프리카로 옮겨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빙하기 때 삭막한 경쟁을 피해 옮겨간 곳이 사막이었다는 것, 도무지 생명체가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사막에서 살아남으려니 몸이 거기에 맞게 적응했다는 것만이 지금까지 알려진 설이다. 낙타는 오늘도 유목민과 여행자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동반자가 되어 사막을 횡단한다. 제 등에 붙은 혹도 무거우련만, 남의 짐까지 나누어진 채 묵묵히 사막을 건넌다.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인간에게는 생각하는 능력이 있기에 다른 동물보다 우월하다고 또 누가 그러던가. 솔직히 낙타만도 못한 게 인간이다. 남의 짐을 나누어지기는커녕 남에게 자기 짐을 떠넘기려고 기를 쓴다. 이대로 살다가는 자기도 남도 다 멸종될 걸 알면서도 꾸역꾸역 그냥 산다. 인간만큼 생각 없이 사는 동물도 드물다.

 

성경에도 낙타가 등장한다. 예수 가라사대,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를 지나가는 것이 더 쉽다”고 말씀하신 대목이다. 혹자는 ‘낙타’의 헬라어 발음 ‘카멜로스’가 ‘밧줄’을 뜻하는 ‘카밀로스’와 비슷해서 생긴 번역상의 오류라고 말한다. 아무렴 어떤가. 풍요와 편리에 중독된 삶은 하나님 나라와 멀다는 뜻만 헤아리면 족할 것을.

 

마음은 평화로운 낙타처럼 살고 싶은데, 몸은 자꾸만 세속의 정글을 향하는구나. 남보다 더 많이 갖고 더 편하게 살고 싶어 안간힘을 쓰는구나. 큰 에어컨을 사면 작은 에어컨까지 덤으로 준다는 ‘1+1 행사’는 또 얼마나 유혹적인가. 아무래도 혹을 키워야 하려나 보다. 영리한 상술에 넘어가지 않고, 자기만의 고유한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마음의 근육 말이다. 뚜벅뚜벅 사막을 걷는 낙타가 내 스승이다.

 

구미정 숭실대학교 초빙교수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