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참전용사, 한국찾았다가 쓰러졌으나, 기적같이 생명건져, 귀국

6·25전쟁 태국군 참전용사인 분럿 분야난씨(Boonlert Boonyanunt·84)가 60여 년 만에 다시 찾은 한국에서 쓰러졌다가 한국의술로 소중한 생명을 건졌다. 태국이었다면 자칫 최악의 순간까지 갈 수 있었다.

 

분야난씨는 ‘태국 참전용사마을 품앗이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박원식 선교사의 도움으로 가족과 다른 태국군 참전용사와 함께 방한 기회를 얻어 지난 18일 한국 땅을 밟았다. 분야난씨 일행은 지난 19일 파주 도라산전망대 등 DMZ 안보관광지를 돌아보고, 이튿날인 20일 포천시에 세워진 ‘태국군 참전용사 기념비’를 찾아 이국땅에서 희생된 전우들을 위해 묵념하고 헌화했다.

 

기념비에 헌화하고 돌아온 분야난씨는 서울 방배역 인근 한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던 중 갑자기 쓰러졌다. 곧바로 구급차에 실려 서울 중앙대병원 응급실로 이송됐고, 만성 경막하 출혈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한 달 이전부터 뇌를 둘러싼 경막 아래에 피가 조금씩 쌓인 것으로 추정됐으며, 병원에서 한때 마비증세가 왔으나 위험한 고비를 넘겼다. 수술은 잘 끝났고, 회복도 빨라 일행과 함께 6박8일의 방한 일정을 마치고 지난 24일 태국으로 돌아갔다. 60여 년 만에 찾은 한국에서 생명의 위기를 넘겼다.

 

분야난씨는 한국전쟁 막바지인 1953년 6월 유엔군 자격으로 미군과 태국군 사이 통역병 역할을 했고, 그해 7월 정전 후에는 재건사업에 힘쓰다가 이듬해인 1954년 5월 고향으로 돌아갔다. 직업 군인인 분야난씨는 만 60세까지 군 복무를 하고 1993년 대령으로 예편했다.

 

박 선교사는 “만약 할아버지가 태국의 작은 마을에서 쓰러졌다면 자칫 최악의 상황까지 갈 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한국에 와서 병을 발견하고 신속히 치료해 참으로 다행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분야난씨의 병원비와 수술비 850만 원은 박 선교사가 부담했다. 이번 방문이 국가 차원의 초청이 아니라, 박 선교사가 있는 품앗이학교 주관으로 이뤄지다 보니 경제적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박 선교사는 이 같은 어려움을 SNS와 메일로 호소하며, 품앗이학교(농협 352-1051-9388-83)에 대한 후원을 기다리고 있다.

 

포천=김두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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