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제시장’ 황정민 닮은 꼴, 김명씨 76세 나이로 당당히 대학입학 제2의 인생 시작

▲ 김명씨가 봄꽃이 활짝핀 교정에서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76세의 적잖은 나이로 대학공부에 뛰어든 이가 있어 화제다. 

지난달 한국폴리텍대학 화성캠퍼스 산업설비과에 입학한 김명씨. 그의 인생 스토리는 영화 국제시장 주인공의 삶과 흡사하다.

 

김씨는 일제강점기였던 1941년 일본에서 13남매 중 11번째로 태어났다. 그가 5살 되던 해 해방과 함께 귀국해 부모님과 서울, 전남 해남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고교 졸업 후 먹고살일이 막막했던 그는 하사관으로 입대했다. 1960년 10월 그가 20세 되던 해다. 이때부터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이 시작됐다.

 

당시 현재의 아내와 교제를 시작했고 결혼도 약속했다. 하지만 집을 구할 형편이 못됐다. 결국 김씨는 1966년 10월 베트남 참전을 자원했다. 맹호부대 특전사 하사관으로 베트남 퀴논에 주둔했다. 당시 전우 4명과 수색을 벌이다 베트콩 200여명과 맞닥드려 교전하는 등 죽을고비를 수차례 넘기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우연한 기회가 찾아왔다.

 

1968년 베트남 현지에 파견된 한 국내 건설회사에서 군인을 모집한 것이다. 그는 자원했고 물류책임자로 1년여간 근무하다 1969년 귀국했다. 그러곤 베트남서 벌은 돈으로 서울 미아리에 단독주택을 구입하고 결혼도 했다. 그는 “‘반드시 살아오겠다’는 아내와의 약속을 지킨 것이 무엇보다 행복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삼남매를 낳아 행복한 결혼생활을 보냈다.

 

하지만 그는 10여년 후 가족 생계를 위해 다시 외국행에 나섰다. 1981년 5월 현대건설 리비아 항만공사 현장이었다. 특전사 근무 당시 배운 잠수기술을 활용해 해저케이블을 연결하는 작업이었다.

 

그는 1년6개월여를 죽을 힘을 다해 일했다. 그는 "리비아에서 외출 한번 안하고 한달에 100만원씩 송금했다. 콜라 하나 사먹는 것도 아까워 못했다"고 했다. 그 돈으로 서울에 한 의류대리점을 차렸다. 30여년간 대리점을 운영하며 삼남매를 공부시키고 결혼까지 시켰다. 지난 2009년 전원생활을 위해 화성시 봉담읍으로 내려왔다.

 

하지만 그는 은퇴후 직업이 없던 2년이 더 힘들었다. 화성시 직업소개소 추천으로 2011년부터 한 건물 관리소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그리고 올해에는 5대 1 이상의 경쟁률을 뚫고 대학에 입학했다. 외국 근무시절 배운 수중용접의 이론과 실기를 마스터하기 위해서다. 

새벽 5시에 집에서 나와 밤 11시 넘어 들어가는 강행군이다. 체력보강을 위해 운동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수업에 집중하기 위해 보청기도 구입했다. 자격증을 따는 것이 목표다.

 

“지금이 내 인생에 있어 가장 행복하다"고 말하는 백팩에 모자를 눌러쓴 김씨의 당당한 대학생활을 응원한다.

화성=박수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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