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빈민가에서 아무런 희망 없이 하루하루 배급되는 빵 한 개로 허기진 배를 채우며 살던 한 소녀의 말을 떠올려본다.
이 말이 탄생하게 한,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에서 자라며 교육은커녕 끼니를 걱정하던 아이들을 대상으로 음악을 가르치는 예술교육 프로그램이다. 엘 시스테마의 성공적인 결실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고 우리나라 역시 ‘꿈의 오케스트라’라는 명칭으로 유사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필자가 대표로 있는 용인문화재단의 경우, 많은 문화사업을 시행하고 있지만 그중에서 예술교육을 역점사업으로 펼쳐온 바, 이를 기반으로 ‘꿈의 오케스트라’ 사업 기관으로도 선정되었다. 예술교육에 관심이 많은 필자는 특히 소외계층 및 다문화계층의 청소년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펼쳐왔다.
이에 따른 성과가 반영되어 올해, 예술교육팀이 본부급으로 확대 승격되었고 관련 직원을 채용했다. 이렇게 예술교육이 청소년 문화의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우리나라에서 펼쳐지고 있는 예술교육은 그 진정한 의미를 간과한 채 그저 일회성 복지차원에서 다뤄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들은 엘 시스테마를 마약과 범죄에 노출된 지역의 아이들을 보호하는데 기여한 사업쯤으로 생각할 뿐이다.
엘 시스테마가 그저 악기를 연주하며 범죄의 현장에서 벗어나는 기회를 만들어 준 것이 아니라, 예술교육을 통해 그들에게 세상이 아무리 암울해도 앞으로의 삶에 기쁨과 희망 그리고 꿈이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 것이라는 점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
이 같은 의미를 높이 평가하는 필자는 내 딸 아들들에게 예술교육을 통해 뭔가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싶다는 생각에 세 아이 모두를 음악학원에 보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날부터 이웃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 했다.
집 앞에 나서면 보이는 수많은 영어 수학 학원들을 지나쳐 찾기도 힘든 음악학원을 향하는 우리 아이들에 대한 이상한 시선은 결국 부모를 향한 시선이었다. 더구나 2016년 설날 아침, 한 자리에 모인 친척들 앞에서 이 억울한 시선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필자를 바라보는 친척들의 시선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필자는 마침 TV에서 들려오는 뉴스를 소재로 화제를 돌려야 했다.
뉴스는 언제나 그랬듯이 이 사회의 암울한 현실을 전해주고 있었다. 북한 김정은의 유엔 안보리 위반, 개성공단 가동 중단, 정치인의 이합집산 그리고 메르스를 떠올리게 하는 지카 바이러스 공포까지. 이것이 내 아이들이 살아가는 2016년 설날의 현실이었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얼마 전, 고등학교에 진학한 막내 녀석이 공부 좀 해보겠다고 영어 수학 학원 보내달라던 말이 생각났다. 대학 등록금이 예체능 계열이라는 이유로 정확히 일 년에 일천만원 들어가는 첫째 아이보다 지금 고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 녀석한테 들어갈 학원비가 필자의 2016년 설날을 어둠 속에 빠뜨리고 있었다.
아, 그래도 시나브로 필자의 가슴을 뜨겁게 하면서 목구멍을 뚫고 나오는 소리가 있었으니… 그래, 그래서 더욱 예술교육이 필요한 거지. 이런 세상에 그것마저 없으면 어찌 살아가려고 이러나? 우리의 아이들이 살아갈 길고 긴 그 소중한 시간을…
김혁수 전국지역문화재단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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