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의 정치판을 보면서 청록파 시인이자 교수였던 조지훈(趙芝薰) 선생이 50여 년 전 일갈한 ‘지조론(志操論)’이 새삼 떠오른다. 1960년 초 나라가 혼미했던 시절, ‘선비’의 뜻을 꺾고 정권에 아부했던 지도자들에게, 후세에 이 나라를 이끌어 가겠다고 나설 지도자들을 향해 던진 선생의 지론은 지금도 가슴을 때린다.
“지조가 없는 지도자는 믿을 수가 없고, 믿을 수 없는 지도자는 따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자기의 명리(名利)만을 위하여 그 동지와 지지자와 추종자를 일조(一朝)에 함정에 빠뜨리고 달아나는 지조 없는 지도자의 무절제와 배신 앞에 우리는 얼마나 많이 실망하였는가.
~지조는 선비의 것이요, 교양인의 것이다. 장사꾼에게 지조를 바라거나 창녀에게 지조를 바란다는 것은 옛날에도 없었던 일이지만, 선비와 교양인과 지도자에게 지조가 없다면 그가 인격적으로 장사꾼과 창녀와 가릴 바가 무엇이 있겠는가.“
조지훈 선생은 지조란 “순일(純一)한 정신을 지키기 위한 불타는 신념이요, 눈물겨운 정성이며, 냉철한 확집(確執)이요, 고귀한 투쟁이기까지 하다.” 그래서 지도자의 지조 유무는 국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므로, 마땅히 지조를 갖추고 국민을 위한 정치를 펼쳐야 하고 개인의 명리와 잇속을 차리는 자는 규탄 받아야 마땅하다고 호통이시다.
“여름에 아이스케이크 장사를 하다가 가을바람만 불면 단팥죽 장사로 간판을 남 먼저 바꾸는 것을 누가 욕하겠는가. 장사꾼, 기술자, 사무원의 생활 태도는 이 길이 오히려 정도(正道)이기도 하다. ~그러나 더러운 변절의 정당화를 위한 엄청난 공언을 늘어놓는 것은 분반(噴飯) 할 일이다. 백성들이 그렇게 사람 보는 눈이 먼 줄 알아서는 안 된다.”
이 나라의 모든 정치 지도자들, 특히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모든 사람들은 지조론을 다시 읽고 크게 깨우쳤으면 한다.
‘더불어 민주당’의 전권을 넘겨받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왜 지휘봉을 잡고 그 고난의 무대에 올라섰을까. ‘경제민주화’를 신앙처럼 외치며 지난 대선 때 ‘새누리당’ 행복추진위원장을 맡아 박근혜 대통령 당선에 기여했던 인물인데 야당의 지휘봉을 잡는다? 권력욕일까, 경제민주화의 실현을 위한 발버둥일까?
현 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을 지낸 조응천 씨의 더불어 민주당 입당은 자기 머릿속에 있다는 X파일을 이용해 원한의 정치를 펼치려는 것일까, 정치(사회)질서를 바로 잡고 자신의 가치를 높여 명예회복의 길을 가려는 것일까?
두 사람 모두 현 정권 탄생의 공로가 있는데도 관심 밖으로 밀려났거나 팽 당했다고 여기고 있던 처지. 그래서 문재인 전 대표가 원한의 정치, 배신의 정치를 이용한다는 따가운 여론의 눈총을 받고 있다.
‘더불어 민주당’을 뛰쳐나와 ‘국민의 당’을 창당, 양당 체제를 3당(다수당) 체제로 정치지평을 바꾼 안철수 대표는 바른 정치를 하려는 것일까, 대통령이 되려는 욕심뿐일까?
문재인 ‘더불어 민주당’ 전 대표는 당을 거의 망가뜨리고 대표 권한을 김종인 위원장에게 넘긴 건 인위적인 물갈이일까, 경쟁자들을 밀어내 대통령 후보에 재등장하기 위한 교활한 포석일까?
상향식 공천, 전략 공천에 친박 진박 비박으로 콩가루 집안이 돼가고 있는 여당 ‘새누리’의 김무성 대표는 자신의 소신을 펼쳐 낼 수 있을까? 이 기회를 살려 대박을 칠까, 쪽박을 찰까?
박근혜 대통령의 호위무사를 자처하며 대구에 내려가 떼거리로 출마한 진박들은 몇 명이나 배지를 달까? 대구 유권자들은 ‘대통령을 위해’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인물들에게 표를 줄까?
어쨌든 지조론 일독을 권한다.
송수남 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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