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인터뷰] 신현삼 대한배구협회 부회장·수원시배구협회장

“아낌없는 지원… 영원한 배구인으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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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관선시대 많은 기업인들이 중앙 경기단체는 물론, 지방 체육단체장을 맡아 사재를 털어서 경기단체를 육성하던 시절이 있었다.

기업인들의 이 같은 체육단체장직 수행은 자의에 의해서라기 보다는 관(官)의 부탁에 의해서나 또는 관의 눈치를 보면서 이뤄졌던 것으로, 지방 경기단체장의 경우 관과의 원활한 유대관계 유지를 위함이 목적이었다. 이 시절 기업인들이 경기단체에 지원하는 출연금은 대부분 세제 감면의 혜택이 주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과거와 같은 강압적인 요구가 사라지고 기업환경이 어려워지면서 세제혜택도 주어지지 않는 요즘, 경기단체장을 자발적으로 맡으려는 사람을 찾기란 쉽지가 않다. 

이 같은 환경 속에서 단지 자신이 좋아하는 종목을 위해 10년째 수억원의 사재를 털어 지방 경기단체를 이끌은 것도 부족해 중앙경기단체의 요직을 맡아 동분서주 하고 있는 중견 기업인이 있다. 

한국 배구 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신현삼(60ㆍ(주)신유 회장) 대한배구협회 부회장(겸 수원시배구협회장)을 만나 그의 남다른 배구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수원시 배구협회장으로 취임한 지 만 10년이 지난 현재 전국적으로 유명한 배구인이 됐다. 비 경기인이면서도 배구에 열정을 바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A 어릴 적부터 배구를 무척 좋아했다. 비 경기인이긴 하지만 사실 초등학교 때 배구부가 있어서 몇 개월 선수생활을 하기도 했다. 

수원에 거주한 뒤로는 생활체육 클럽에 가입해 2~3년동안 동호회 활동을 하게 됐는데 클럽 회장까지 맡으면서 배구에 더욱 빠지게 됐다. 

동호회 회장을 하면서는 수원시 배구협회와 연이 닿아 2005년 회장직을 맡게 됐고, 이후 대학배구연맹회장 4년, 실업연맹회장을 2년 동안 역임할 수 있었다.

 

Q 지난해 9월 대한배구협회 부회장을 맡았다. 요즘 같은 불황의 시기에 기업인들이 사회단체장을 맡기를 꺼리는 추세인데 수원시배구협회장을 지속하면서 중앙 경기단체 부회장을 맡는 어려운 선택을 하게된 이유는.

A 배구를 그만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대한배구협회 부회장이 되기 이전에 각종 국제대회의 대표팀 단장을 네 차례 맡았다.

국제대회에 참가할 때마다 사비를 털어 선수들에게 격려금을 주는 등 수 천만원을 썼는데 그때 인연을 맺은 대표 선수들하고는 아직도 연락을 주고받으며 친하게 지낸다. 이 모든 것들이 내겐 큰 즐거움이었고,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던 것 같다.

 

Q 수원시 배구협회장에 2005년 취임한 이후 2008년부터 세계 최고 권위의 ‘월드리그 국제 남자배구대회’를 수원에 유치해 오고 있다. 도 단위 경기단체도 아닌 기초 경기단체에서 세계적인 큰 행사를 유치해 치러낸 비결은 무엇인가.

A 그동안 배구계에 몸 담으면서 쌓은 인맥이 없었다면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보다 대한배구협회 관계자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절대 불가능했을 것이다. 

대한배구협회 임원을 비롯한 모든 주변 사람들과 돈독한 유대관계를 형성한 것이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또 수원시의 도움도 빼놓을 수 없다. 시에서 적극적으로 도와줬기 때문에 수원에서 월드리그와 같은 큰 대회를 유치해 치뤄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Q 2009년부터 3년간 프로배구 컵대회를 유치하고 한국전력, 현대건설 등 남녀 프로팀을 유치하는 등 수원을 ‘배구 메카’로 만든 데에 대한 보람과 감회도 남다를 텐데. 또 각종 국제대회에 한국팀 단장을 역임하면서 잊지 못할 순간을 꼽는다면.

A 과거 수원은 배구의 불모지나 다름없었지만, 요즘 주위에서 ‘수원이 배구의 메카로 발돋움했다’는 평가를 해주시니 보람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앞으로도 수원시 배구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배구는 정말 매력 있고 좋은 종목이라고 본다. 대한배구협회 부회장 역할도 충실히 해야겠지만, 수원시 배구 발전을 위한 노력도 게을리할 순 없다.

 

국가대표팀 단장으로서는 2013년 월드리그를 잊을 수 없다. 당시 한국은 포르투갈 원정 이전만 해도 승점 7로 6개 팀이 속한 C조 최하위로 처져 있어 다음 년도 월드리그 참가가 불투명했다.

 

그런데 내가 단장을 맡아 떠난 포르투갈 원정 2연전에서 모두 승리해 C조 3위를 차지했고, 월드리그 잔류에 성공했다. 당시 최종전에서 홀로 30점을 올린 라이트 서재덕(한국전력)의 활약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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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많은 개인재산을 털어 유망주들에게 장학금을 내놓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수원 배구의 근간이 되는 초ㆍ중학교 배구가 침체 돼 있다. 학교 배구의 활성화 방안과 저변확대 복안은.

A 현재 수원에는 이미 5개의 초ㆍ중ㆍ고 배구팀이 있지만, 팀이 전무한 남자 초·중교 팀 창단이 절실하다. 이리저리 고민을 많이 하고 있지만, 내 의지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시 체육회, 교육지원청과 꾸준히 소통을 해야 하고, 무엇보다 학교장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영통지역의 한 중학교에 배구부 창단을 고려하고 있는데 적극 노력해 성사시켜보겠다.

 

Q 기업인으로서 많은 시간을 할애해 경기장을 빠짐없이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항간에서는 혹시 정치적인 꿈을 가진 것이 아닌가 하는 시선도 있는데 이에 대한 견해는.

A 정치는 생각도 안 하고 있는데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니 당혹스러울 뿐이다. (웃음) 정치는 내 성격과 체질에 맞지도 않고 무엇보다 관심이 없다. 행여나 정치에 대한 적성이 맞는다면 생각 정도는 해보겠지만, 안 맞는데 어쩌겠나.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정치에는 관심조차도 없다.

 

경기장을 찾는 건 역시 배구가 좋아서다. 우리 지역팀 경기가 있으면 궁금해서 다른 일이 잡히질 않는다. 또 내가 승부욕이 강한데 지역팀이 경기에서 질 때면 이와 관련해 발언해야 만 직성이 풀린다. 모든 스포츠가 그렇겠지만, 내게 있어 배구는 한 번 빠지면 도저히 빠져나올 수가 없는 마약과 같다.

 

Q 지난달 남녀 국가대표팀의 경기력 향상을 위해 출범한 ‘V-퓨처(Future)펀드’ 모금활동에 1천만원, 대표팀 후원금으로 1천만원을 쾌척했다. 중소기업인으로서 드문 일인데 선뜻 거금을 내놓게 된 이유는.

A 침체된 한국 배구를 살리기 위해서다. 아시다시피 남자 배구대표팀이 2016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본선 무대를 밟지 못하게 됐다. 

젊은 선수들을 육성해 남자 대표팀의 경기력 향상을 도모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했고, 한국배구를 이끌고 있는 협회의 부회장으로서 ‘V-퓨처펀드’에 기부를 결심했다. 

여자 대표팀은 올림픽 예선이 아직 끝나지는 않았지만 본선에 진출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배구계 일각에서 여자대표팀을 제외한 것에 대한 지적이 있는데 남자 대표팀만큼 사정이 급박하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여자팀에 대해서는 협회 임원들과 차후에 논의하기로 했다.

 

Q 앞으로 수원시 배구 발전과 더 나아가 한국 배구 발전을 위해 하고 싶은 일과 계획이 있다면.

A 우리 나이로 올해 환갑이다. 많으면 많다고 할 나이인데 현 위치에 만족한다. 더이상 위는 바라보고 있지 않다. 

지금은 후배 양성을 위해 여러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후배들을 위해 길을 터줄 생각으로 말이다. 후배들에게 길을 터준 이후에는 뒤에서 (후배들을)묵묵히 지원해주는 영원한 배구인으로 남고 싶다.

또 올해로 대한배구협회 설립 100주년이다. 최근 파벌 문제로 약간 시끄러웠는데, 대의원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화합과 단결을 해야 한다는 마음은 일맥상통했다. 아직 앙금은 조금 남았다곤 하나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것이라 보고, 이번 배구협회 100주년 행사를 성공적으로 개최, 마무리하겠다. 

조성필기자

사진=전형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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