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작가와 고향 그리고 기념관

소설 <돈 키호테>는 스페인의 작가 세르반테스에 의해 써진 세계문학의 한 봉우리다.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다는 이 소설은 그 유명세만큼이나 그의 고향인 라 만차 지방에서는 가히 종교적이라 할 만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아르가마실라 마을 입구의 길가에는 커다란 돈 키호테의 실루에트 상像이 서서 안내를 한다.

부근에 돈 키호테와 산초 판사의 그림이 벽에 그려진 하얀 풍차가 있어서 안으로 들어가 보면 이 마을을 찾아온 관광객들을 위한 식당이 있다. 마을 복판에는 소공원이 있고 거기에도 돈 키호테와 산초 판사의 석상이 서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돈 키호테의 집은 마을의 교회에서 가까운 곳이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안은 텅 빈 마당이다. 한쪽 구석에 땅 밑으로 들어가는 문이 하나 있다. 하얀 벽의 동굴에는 나무 책상이 하나, 돌바닥 침대가 하나 놓여 있다. 가히 세계적 풍운아 돈 키호테의 궁궐 같다. 그러나 이 동굴은 돈 키호테가 감옥살이를 하면서 소설을 집필했다는 것을 근거로 해서 만든 인위적 공간이다.

 

소설에서 돈 키호테의 고향은 라 만차라고만 돼 있지 마을 이름은 ‘들먹이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럼에도 돈 키호테를 이 지방의 영원한 주민으로 살려 놓고 싶은 사람들이 돈 키호테의 고향을 아예 아르가마실라로 정한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행복한’ 작가의 모습을 보게 된다. 주민들이 자기 고장의 작가를 얼마만큼 사랑하고 아끼는 가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적인 발생이었다. 곧 작가와 주민을 하나로 연결한 아름다운 ‘끈’이었다.

 

얼마 전 문화체육관광부는 기형도 시인의 문학관을 광명시에 건립한다고 발표했다. 기형도 시인은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안개>로 당선하여 29세의 나이로 작고할 때까지 구체적 이미지들을 통해 우울한 자신의 경험과 관념들을 독특하게 표현한 바 있다. 

1960년 경기도 옹진군 연평도에서 출생한 시인은 1964년부터 경기도 광명시 소하동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이를 근거로 광명시와 시인의 모교인 시흥초등학교 총동문회가 2014년부터 꾸준히 추진한 끝에 마침내 문학관 건립이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또 한 번 행복한 작가의 모습과 만나게 된다. 유년기를 보낸 시인의 족적을 오래오래 기리고자 문학관을 건립하는 데 힘을 모은 주민들의 뜨건 작가 사랑을 보게 되는 것이다. 시인은 비록 짧은 생애를 살다 갔지만 그의 작품과 이름은 주민들과 함께하니 이보다 행복한 일은 없을 것이다.

 

문학 작품을 창작하는 일은 작가의 몫이지만 이를 수용하고 보존하는 일은 우리 모두의 즐거움이자 자랑이다. 특히 품격 있는 나라의 국민이 되기 위해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경기도 양평의 ‘황순원 소나기 문학관’, 안성의 ‘조병화 문학관’과 ‘박두진 문학관’ 등이 그 좋은 예라고 말할 수 있다.

 

작가의 이름을 붙인 문학관은 그 작가의 고향(태어난 곳은 물론 성장 내지는 장기간 머문 곳 포함)과 어떤 형태로든 ‘인연’의 끈이 닿아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만 그 지역 주민들의 사랑을 받을 것이며, ‘우리 고장의 작가’로 오래도록 곁에 두고 싶어 할 것이다.

 

윤수천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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