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강이 풀리면…

전국의 강이 얼어붙었다. 바다마저 얼어붙었다. 제주의 하늘 길도 얼어붙었다. 이제 한파의 기세는 한풀 꺾였지만 여파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서해 연안 일부는 여전히 얼어있고, 바닷물이 얼었다가 녹은 곳에서는 유빙이 바닷길을 막아 어민들의 발을 묶고 있다.

포구의 횟집은 수족관이 통째로 거대한 얼음덩이가 돼 말 그대로 개점휴업 상태이고, 거대한 얼음덩이가 조류를 타고 바닷길을 막으면서 여객선 운항도 차질을 빚고 있다는 소식이다. 

전국적으로 몰아친 폭설과 한파가 설을 앞두고 치솟는 물가와 함께 서민들의 주름살을 깊게 만든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한파로 인한 피해가 외신을 타고 속속 전해진다. 

미국 북동부를 강타한 눈폭풍은 급기야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사태까지 몰고 왔다. 희망차게 맞이한 새해가 시작하자마자 들이닥친 한파로 인해 사람들의 몸과 마음까지 얼어붙게 만들었다.

 

강은 풀린다. 제 아무리 동장군이 기승을 부려도 꽁꽁 언 얼음 밑으로는 쉬지 않고 물길이 흐르다가 때가 되면 강이 풀리고 훈풍이 불기 시작하면 봄이 오기 마련이다. 변하지 않는 자연의 순리가 있어 겨울을 버텨 낼 수 있다.

겨울은 우리에게 기다림과 그리움이라는 마음의 양식을 제공한다. 초목이 언 땅 깊숙한 곳으로부터 물을 끌어올려 새싹을 피울 때까지, 땅 속 벌레들이 기지개를 켜면서 언 땅을 뚫고 나올 때까지, 앙상한 나뭇가지가 헐벗은 겨울 산을 지키고 푸른 숲을 이룰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 어떤 작은 풀잎 하나도 어느 순간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법은 없다. 모든 생명은 겨울이라는 질기고 모진 추위와 바람을 견뎌내고 기다림을 거쳐야 다시 소생의 기쁨을 누릴 수가 있다.

 

겨울은 추워야 제 맛이다. 얼 때는 얼어야 한다. ‘쨍’한 얼음의 결기는 순수와 성성한 정신의 표상이다. 한반도 남쪽 하동 평사리에 사는 시인 조문환은 평사리 일기를 통해 소식을 전해왔다. ‘강이 얼었다/이 얼마만이냐/고맙다/겨울에 강이 언다는 것이/그래야 강물이 녹아 물이 흐르고/봄이 온다는 것을 알 수 있으니/얼지 않은들 어떻게 알 것인가/겨울에 이처럼 강이 얼고/봄이 올 무렵에는 강이 울어줘야/봄이 깨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터이니/ 울기 위해서는 강이 얼어야만 하느니/그러니 강이 언다는 것은 울기 위함임을/오늘 밤에 또 강이 언다’.

 

죽은 것은 울지 못하지 않는가! 살기 위해, 살아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이 겨울에는 강이 얼어야 한다.

 

언제 경제가 좋았던 적이 있었던가, 문화가 융성한 시절이 있었는가, 정치권이 국민을 섬겨본 적이 있었는가. 사람들은 다 안다. 그렇다고 해도 어차피 인생이 기다림이란 것을. 김동환 시인은 ‘강이 풀리면’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강이 풀리면 배가 오겠지/배가 오면은 님도 오겠지/님은 안 타도 편지야 탔겠지/오늘도 강가서 기다리다 가노라…’

 

강이 풀리면 배도 오고 님도 올 것이다. 사는 일이 다 이런 기다림 속에서 진행된다. 강이 풀리면 선거를 통해 국민을 위한 새로운 정치가 이루어지겠지, 강이 풀리면 경제도 좋아져서 살림살이가 넉넉해지겠지, 강이 풀리면 문화가 융성해지고 온 국민이 행복해지겠지. 

또 혹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꿈과 희망은 남겠지. 봄이 와야 받을 수 있는 편지를 기다리듯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강이 풀리길 기다린다.

 

김동언 경희대학교 아트퓨전디자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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