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내가 첫 번째로 놀란 것은 무대 위의 단원들이 너무도 젊어 보인다는 점이었다. 얼마쯤은 화려한 의상에다 약간의 화장을 한 덕분이긴 하겠지만 그런 것을 감안하더라도 다들 50대쯤으로 보였다. 여기에다 연주하는 모습도 70대 노인들이라곤 믿어지지가 않았다.
두 번째로 놀란 것은 객석의 분위기였다. 실버악단의 연주이니 객석이 썰렁할 것으로 여겼는데 웬걸 빈 좌석은커녕 통로에까지 초만원이었다. 게다가 연주 내내 박수를 치거나 환호하는 모습이 젊은 가수의 콘서트를 연상시켰다.
연주회는 성황리에 끝을 맺었다. 다들 어찌나 신바람이 나서 연주와 노래를 하는지 객석에 앉은 나까지도 덩달아 신이 났다. 그런데 뒷얘기가 더욱 나를 흐뭇하게 해주었다. 이곳 단원들은 모두 한때나마 가수나 연주자를 꿈꿨던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그 동안 먹고 사는 일에 매달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꿈을 접어야 했는데 이제 비로소 자유인으로 자신의 젊은 날의 꿈을 되찾아 다들 행복하게 노후를 보낸다는 것이었다.
이건 아주 중요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린 날의 꿈을 나이 들어 이룬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이룬 꿈으로 이웃을 즐겁게 해준다는 것! 뛰어난 프로는 아닐지라도 훌륭한 아마추어로 설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이겠는가.
이름만 대면 금방 고개를 끄덕일 한 고위공직자는 자리에서 물러나자 카메라를 둘러메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빈 끝에 개인전을 열어 주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공직 생활에서 누리지 못한 개인의 꿈을 노후에 이룬 본보기라 하겠다.
그런가 하면 젊은 날부터 교도소를 밥 먹듯 드나들던 한 중년 남자는 어느 날 경찰차에 실리어 가는 도중 우연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감동해 복역을 마치고 나오자 새 사람이 되어 기타를 둘러메고 요양원과 노인정을 찾아다니면서 봉사 활동을 하는 이도 있다. 어두운 과거를 청산하고 남은 인생을 이웃을 위해 뜻 있게 살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런데 그가 경찰차 안에서 들은 노래는 ‘눈물로 쓴 편지는 지울 수가 없어요’ 였다고 한다.
날로 늘어나는 고령화 사회를 생각할 적에 이런 이야기는 단순한 화젯거리로 끝날 게 아니란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도 가슴에 묻어둔 어린 날의 꿈을 나이 들어 펼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의미 있고 아름다운가.
노년은 그저 하는 일 없이 시간을 죽이는 시기가 아니다. 수명이 늘어난 현대 사회에서의 노년은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제2의 인생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시기야말로 젊은 날에 놓친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는 것. 마치 오케스트라의 장엄한 후반부 같은 삶이라는 것.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길 필요가 있다고 본다.
실버악단의 연주를 보면서 최근 들어 우리 주변에서 점차 늘어나고 있는 각종 평생학습 차원의 교육을 돌아다보게 되었다. 시 창작교실, 사진 동우회, 서예교실, 그림 동우회, 구연동화 모임, 무용교실, 노래교실 등에서 자신의 노후 인생을 재창조하는 이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윤수천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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