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희망 주는 일… 국민 위해 희생하는 모습 보여야”
“대한민국 정치는 뇌사 상태다” 정치는 사람의 뇌와 같다. 뇌는 사람의 손과 발, 그리고 마음마저 움직이는 절대적 요소다. 정치가 사람의 뇌라면, 다른 모든 사회 분야는 사람의 몸과 같다.
그래서 총선은 뇌사 상태에 빠진 대한민국 정치를 살릴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 풍토를 만들려면 국민의 심판, 즉 제대로 된 투표가 있어야 한다. 진정한 대의 민주주의는 민주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민주시민에 의해 이뤄진다.
‘정치권 최고의 책사’, ‘대한민국의 장자방’, ‘범보수의 제갈량’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은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76)은 2016년 병신년 새해, 갈등과 반목의 연속이었던 우리 정치권을 국민이 심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면 국민이 메스를 손에 들 수밖에 없다는 것. 윤 전 장관은 “국민이 사적인 인연, 학연과 지연 등에 연연하지 않고 제대로 된 인물을 뽑아 ‘나 대신’ 일을 시켜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리고 난 뒤 국민의 ‘감시와 참여’가 수반되면 정치가 제 구실을 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경기일보는 새해를 맞아 정치권과 국민에게 새로운 메시지를 전하는 윤 전 장관을 만났다.
-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이태원 자택에서 여유를 갖고 쉬고 있다. 그동안 읽지 못했던 책들도 읽고 있다. 최근에는 장하성 교수의 ‘왜 분노해야 하는가’를 읽고 있으며 한국현대사 관련 서적들도 계속해서 읽고 있다. 책을 가리면서 읽지 않는 잡식성이다. 집 주변을 산책하기도 하며 가끔은 지인들과 만나 즐거운 시간도 갖고 있다.
-정치가 우리 사회에 가져온 순효과와 역효과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가장 큰 순효과는 한국 사회를 민주화시켰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많은 분이 노력하셨고 또 안타까운 희생도 함께 있었다. 크게는 국가 정책에 대해, 작게는 동네 소소한 일을 하면서도 모두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러면서 사회 전반적인 발전도 함께 이뤄졌다. 정치가 가져온 순효과다.
역효과는 정치 자체의 역효과라기보다는, 정치가 제 구실을 하지 못하면서 사회적 혼란을 일으키고 민주화 이후 사회를 보다 성숙화 시키지 못했다는 점이다. 물론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갈등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 대한민국의 정치는 정치의 역할, 즉 다양한 생각과 이견을 조율해 하나로 뭉치게 하는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오히려 갈등과 반목을 부추기고 있다. 정치가 국가발전에 도움은 못 될 망정, 국가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정치는 무엇인가.
정치는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일이다.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하는 일이야말로 정치인의 가장 첫 번째 의무다. 국민에게 희망을 주려면 어떤 가치로 한국 사회를 운영해야 하는지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희망을 품을 것 아닌가.
그래서 정치는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인들이 국민의 이름으로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모습을 버리고 국민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자기를 희생하는 모습을 보기를 국민은 원한다. 국민은 감동을 받고 싶어하는데 정치인들이 감동을 안 시켜준다.
-여당과 거대 야당, 양당체제를 바라보는 관점은.
양당체제가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카르텔 구조, 기득권을 유지하기 좋은 구조라는 것이 문제다. ‘이번에는 네가 했으니 다음에는 내가 한다’는 정치 풍토 속에서는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양당체제에서는 항상 권력을 나눠 가지면 되니까.
최근 민주당 분열사태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제1야당으로서 국민에게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기존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하기 때문에 매번 선거에서 패하는 것이다. 선거에서 패할 때마다 그들이 외치는 ‘뼈를 깎는 심정’으로 개혁한다는 말을 이제는 국민 어느 누구도 믿지 않는다. 뼈를 깎기는커녕, 살도 깎지 않았다. 개혁을 위한 실천도 없지만, 그 이전에 고민도 없었다.
우리가 택한 대의 민주주의는 파탄지경에 이르렀고 정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니, 사회가 제대로 돌아갈 수가 없다. 정치부터 제 역할을 해야 한다. 국가의 존재가치는 국민이다. 국민을 위한 정치는 정치권 극한 대립과 갈등으로 꽉 막혀 있다.
-안철수 의원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안철수 의원과는 지난해 새정치민주연합 사태 이후 만난 적도 연락을 한 적도 없다. 최근 민주당 탈당과 신당 창당 등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을 텐데,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돌고 돌아 시작 당시의 자리로 돌아온 것 아닌가 한다.
밖이 아닌 그 안(민주당)에서 변화를 이끌어보려고 했는데 여의치 않았던 것 같다. 안 의원이 쉽지 않은 선택을 했지만, 대한민국 정치 발전을 위한 일이라고 본다. 마음 속으로 응원하고 있다.
-안철수 의원이 뜻을 함께하자는 의견을 전해온다면.
나는 정당정치에 몸을 담을 생각이 없는 사람이다. 즉 현실정치는 하지 않는다.
-보수의 제갈량으로 불린다. 유승민 의원 사태는 어떻게 바라보는가.
유승민 의원이 야당과 함께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부분은 한국 보수가 나아가야 할 길이 아니었나 싶다.
정부의 행정권 남용을 국회가 견제하는 것인데, 국회의 존재 이유를 생각해보면 국회가 해야 할 일을 했다고 본다. 이후 많은 말과 많은 일이 있었고 당장 큰 변화는 이뤄낼 수 없었지만, 의미 있는 첫 걸음을 뗐다고 보고 있다.
-의원내각제는 실현이 가능하다 보는가.
의원내각제는 우리보다 민주주의가 100년 이상 먼저 도입된 유럽 등에서 이뤄진 제도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언젠가는 우리도 의원내각제로 전환되지 않을까 한다.
그러나 아직은 국민 대다수가 직접 대통령을 뽑고 싶어한다. 국민이 최고권력자를 직접 뽑고 싶어하는 만큼, 아직 의원내각제를 바라는 목소리는 높지 않다. 특히 의원내각제는 정치 풍토가 변화해야 정착될 수 있다.
대화와 타협이 우리 정치권의 일상으로 자리 잡는다면, 자연스레 의원내각제가 대두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 정치는 대화와 타협이 아닌 극한 대립의 연속이다.
이런 상황 속에 의원내각제는 시기상조라고 생각한다. 의원내각제라는 제도가 먼저 바뀌고 나서 정치 풍토나 사회 문화가 바뀔 수도 있지만, 정치 풍토나 문화가 변화한 뒤 제도가 변화할 수도 있다.
-4월에 총선이 있다.
우리가 택한 대의 민주주의는 나를 대신해 국회에 일하는 일꾼을 보내는 제도다. 내가 직접 하지 못하는 일을 대신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일꾼들이 주인의 말을 듣지 않는다. 자신의 기득권만 챙기려고 한다. 그러면 심판을 해야 한다.
일꾼이 제대로 안 하면 다른 일꾼을 선택해야 한다. 그래서 투표는 심판이다. 안타깝게도 여전히 대선이든 총선이든 국내 투표율은 높지 않다. 정치가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은 국민이 정치를 심판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주 한잔 기울이며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불평을 늘어놓기보다는 투표를 통해 국민의 힘을 보여줘야 한다. 투표만큼 정치를 심판할 방법은 없다.
민주주의는 민주시민, 즉 민주적인 시민의식을 가진 국민이 있어야 가능하다. 앞으로의 정치발전은 국민의 책임이자 국민이 하기에 달렸다. 일 예로 우리는 여전히 투표에서 사적인 인연에 집착해 표를 던진다.
학연과 지연 등. 후보가 내 사돈의 팔촌의 당숙의 고교 후배의 조카라면 앞뒤 안 따지고 표를 던진다. 경상도와 전라도는 물론, 수도권도 마찬가지다. 나와의 인연이 그 사람의 자질을 대변하지 않는데도 (투표 형태는)바뀌지 않는다. 심판을 해야 한다.
나와의 인연을 따지지 말고 자질을 갖춘 이를 뽑아야 한다. 투표 행태가 여전히 사적인 연에 묶여 있다면 대한민국의 정치 발전은 요원하기만 하다.
시민단체 역시 국민을 올바른 길로 선도해야 한다. 최근 시민단체 인사들이 주류 정치권으로 편입되면서 시민단체의 운동이 많이 약해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시민단체는 시민의식을 개혁하기 위한 캠페인 등 활동에 나서 국민에게 민주시민의식을 심어줘야 한다. 언론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심판에 그치지 않고 뽑은 이후에는 감시와 참여를 통해 내가 뽑은 일꾼이 제대로 일을 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국민의 눈이 무섭다는 것을 국민 스스로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만 대한민국의 정치, 민주주의가 더욱 성숙할 수 있다.
안영국기자
윤여준 前 장관은…
▲1939년 충남 논산 출생
▲단국대 정치학과 졸업
▲동아일보•경향신문 기자
▲대통령 공보수석•비서관
▲2003년 환경부 장관
▲제16대 한나라당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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