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쿨러닝’ 썰매 불모지서 황금길 닦는다
2010년만 해도 예산이 부족해 외국팀이 버린 썰매를 수리해 타거나 빌려서 경기에 출전했다.
기량 미달로 대회 중 썰매가 뒤집혀 기록조차 나오지 않는 건 다반사였다. 이렇게 찬밥 신세였던 한국 썰매가 최근 대형 사고를 치기 시작했다.
원윤종(30강원도청), 서영우(24ㆍ경기도BS연맹)가 지난해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18위에 오른 데 이어 올해 초 세계선수권대회에서 5위를 차지한 게 시발점이었다. 가능성을 보인 이들은 지난해 11월 봅슬레이의 본고장 유럽에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지난해 11월 29일(이하 한국시간) 독일 알텐베르크의 봅슬레이 경기장에서 열린 2015-2016시즌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IBSF) 월드컵 1차 대회 남자 2인승에서 1·2차 시기 합계 1분53초02를 기록하며 동메달을 획득한 것. 한국이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다음으로 권위가 높은 국제 대회인 월드컵에서 메달을 딴 건 이들이 처음이었다.
불과 일주일 후 원윤종과 서영우는 또 하나의 메달을 추가하는 쾌거를 이뤘다. 이들은 5일 독일 빈터베르크에서 열린 IBSF 월드컵 2차 대회에서 1·2차 레이스 합계 1분50초71로 동메달을 따냈다. 이날 기록은 6일 전 1차 대회의 기록보다 2초31 빨랐다. 이용 국가대표팀 감독은 “한국 선수들이 낯선 유럽 트랙에서 두 번 연속 동메달을 딴 것은 그야말로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원윤종과 서영우는 수천억원 규모의 썰매 빙상장을 갖춘 유럽·북미 지역의 선수들과 비교하면 요즘 유행하는 말로 ‘흙수저(집안 배경이 좋은 금수저에 대비되는 말)’에 가깝다. 한국에는 썰매 전용 경기장이 하나도 없다. 지난 2010년 평창에 ‘스타트 훈련장’이 생기기 전까진 아스팔트 바닥에서 바퀴 달린 썰매를 밀며 훈련했다.
유소년 시절부터 썰매를 타는 외국 선수들과 달리 원윤종과 서영우는 5년 전까진 성결대 체육교육과에 다니며 교사를 꿈꾸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미래를 고민하던 이들은 어느 날 학교에 붙은 ‘국가대표 선발전’ 포스터를 보고 덜컥 지원해 합격했다. 열심히만 하면 올림픽에도 나갈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하지만 막상 뛰어든 한국 썰매의 현실은 너무 열악했다. 원윤종, 서영우를 지도한 이상균 경기도BS연맹 전무이사는 “처음에는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 외국 선수들이 타던 썰매를 중고로 구입해서 썼다”고 돌아봤다. 이 전무는 두 선수에게 체력 훈련을 집중적으로 시켰다.
제대로 된 봅슬레이 시설이 없다 보니 체력에서라도 외국 선수들을 압도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이 전무는 “두 선수는 운동신경이 뛰어날 뿐 아니라 머리도 좋고, 무엇보다 성실하다”며 “당분간 한국 썰매에서 이런 선수들이 나오기 힘들 것 같다”고 전했다.
원윤종과 서영우가 ‘빙판의 F1(포뮬러 원)’ 봅슬레이에서 기적을 연출할 수 있었던 건 남다른 열정이 비결로 꼽힌다. 원윤종은 2011-2012시즌 자격 미달로 월드컵에 출전도 못 할 만큼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
1년도 안 된 초보가 10년 이상 썰매를 탄 외국 선수와 경쟁하는 건 무리였다. 하지만 ‘이 길이 아니면 안 된다’는 간절함이 그들을 붙잡았다. 매일 10시간의 강훈련을 견뎠다. 유럽과 북미의 10여개 이상 경기장을 모두 달려보고, 경쟁 팀을 찾아가 코스 운영 방법을 묻기도 했다.
군 복무 시절 체중이 77㎏이었던 원윤종은 썰매에 가속도를 올리기 위해 피나는 노력으로 몸을 불렸다. 하루 8끼, 매일 밥 15그릇을 해치웠다. 야식으로 라면 3봉지는 기본이었다. 과식으로 토하면 다시 먹기를 반복하며 100㎏대까지 체중을 늘렸다. 원윤종은 첫 해 45위에 그쳤던 랭킹을 지난 시즌 10위까지 끌어올렸다.
훈련 환경도 좋아지고 있다. 봅슬레이 대표팀은 1년에 120일가량 해외에서 훈련하고 대회에 출전한다. 대우인터내셔널, 아디다스, KB금융, 현대자동차 등 든든한 후원 업체도 갖게 됐다.
내년 2월 평창에 전용 경기장이 완공되면 한국 대표팀이 가장 먼저 달리게 된다. 원윤종은 “많은 분들이 지원해주신 덕분에 점차 좋은 환경에서 운동하고 있다”면서 “트랙이 하루빨리 완성돼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된 훈련을 하고 싶다”고 활짝 웃었다.
서영우는 “지금 내가 있는 현실에서는 2년 뒤 평창동계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것이 최대 목표”라며 “목표를 이루기 위해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조성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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