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분노하는 청년세대… 여야 떠나 통합의 리더십 필요”
그는 지난해 갑작스런 신장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았다. 병마(病魔)는 건강을 앗아가고 그를 큰 고통에 빠지게 했지만, 흘러간 시간을 돌아보게 하고 앞으로 주어진 시간들을 뜻있게 살아가야 한다는 삶의 방향성을 확고하게 만들었다. 지난해 우리들의 모습과 닮아있다.
생각지도 못했던 ‘메르스’로 온 국민은 혼란에 빠졌고, 서로를 의심하고 비난하는 사이 사태는 극으로 치달았다.
어떤 이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그때의 ‘반성’이 또 다른 ‘결실’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를 이문열과 함께 고민해 봤다.
나로서는 이것이 계기가 됐다. 병상에 누워 보니 전 생애에 걸친 시간들, 그리고 앞으로 나에게 주어진 시간들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생명에 위협은 없었다 하더라도, 마음속으로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됐다.
작가로서 내 일을 하면서, 생산하는 삶을 살아가야겠다는 의지가 확고해졌다.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다 쓰려면 20년이 걸려도 부족할 것 같은데 큰일났다. 무엇을 먼저 쓸지 우선순위를 정하고 있다.
사회를 이끌고 여론을 형성하는 청년들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힘 있는 존재다. 헌데 기성세대가 갖가지 핑계로 그들의 힘을 악용하고 있다.
그 불행이 너무 강조되고, 과장되고 있다. 문제를 해결하는 키워드가 아니라 청년들을 더 반항적으로 몰아가고 있다. 다양한 집단에서 문제해결을 위한 정책들을 제시하고 있다.
대부분이 기성세대가 잘못했다는 저주에 가까운 해석을 한다. 또 대부분이 돈 가진 자들 때문이라는 결론을 짓는다. 젊은이들에게 있어 기성세대를 제일 먼저 제거해야 할 적으로 만들고 있다. 그런것들이 우려스럽다.
아마 야당의 경우 호남민심을 두고 일련의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싶다. 글쎄, 판단을 잘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이 득이 될지 실이 될지 모른다.
선거란 것은 한치 앞을 모른다. 선거일에 어떤 모양으로 나타날지 모르겠다. 특히 통합에 대한 이야기가 점점 적아지고 있는데, 여야를 떠나 통합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가장 큰 최대공약수를 가지고 선두에 설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것은 개인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이 시대가 가지고 있는 문제일 것이다.
-유권자들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나.
많은 사람들이 선거 당일 다양한 방법으로 투표 인증을 하는데 참으로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자칫 잘못하면 공개투표 형식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번 오세훈 서울시장 때도 가는 것이 곧 오세훈 표임을 알 수 있었다.
반대하면 안가면 그만 아니냐. 간다는 것 자체가 내가 그 사람을 지지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나는 것이다. 투표 인증이 잘못된 수단으로 이용될 수 도 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서는 안된다. 흐름에 편승하지 않는, 냉정하고 냉철한 시각이 필요하다.
-언론에 비춰지는 ‘보수 작가’라는 타이틀, 부담스럽고 힘든 점은 없는지.
보수 작가라는 이미지가 굳어져 있다. 참으로 조심스럽고, 피곤한 문제다. 사실 성격이 다른 세력, 주장이 다른 세력을 좌우로 구분하는 것 자체가 마음에 안든다. 진보와 보수라는 단어도 마찬가지다. 진보ㆍ보수는 사상이 아니라, 제도다. 어떤 일을 어떤 방식으로 처리하나에 따른 문제다. 모든 일을 한쪽에만 치우쳐 진보적, 보수적으로 처리하는 것은 있어서는 안된다.
-작품 이야기도 해보자. 집필 중인 작품은 어떤 내용인가.
1980년대를 다룬 소설이다. 10여년전부터 생각하고 있던 내용이다. 이 책은 안쓰면 후회할 것 같다. 되도록이면 3년 이내에 끝을 내고 싶다. <도가니와 모루>를 제목으로 생각하고 있다. 1980년대의 주류를 하나로 결정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보기에는 어느 시대든 하나의 노래는 나올 수 없다.
80년대는 두개의 격렬한 노래가 있었다. 음악에 보면 대위법이라는 것이 있다. 독립성이 강한 둘 이상의 멜로디를 동시에 결합하는 작곡기법인데, 소설은 이것을 차용해 민주화인권자유화의 멜로디에 산업화근대화민족자본 형성이라는 노래가 같이 흘러가는 내용이다. 처음부터 조화로운 것은 아니다. 불협화음 속에 전체적인 화음을 만들어 나가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제목에 보이는 도가니는 주물 할 때 쇠를 녹이는 틀이다. 불이라는 시련과 고통이 가해져 다양한 금속을 을 집어넣어 원하는 모양으로 찍어낸다. 모루는 대장간에서 쇳덩이를 두드려 칼이나 낫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80년대가 가치를 뽑아내기 위한 도가니였는지, 혹은 처음부터 모루였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오랫동안 이천(부악문원)에 터를 잡고 있다. 올해 고향인 경북 영양으로 내려간다는 소문이 돌던데, 계획된 건지.
지난해 10월5일 주민등록을 이천으로 옮긴지 30년 됐더라. 올해는 옮길까 싶은데, 사실 많이 고민된다. 변경12권, 시인, 아가, 불멸, 황제를 위하여 등 대부분의 작품들이 이곳에서 탄생됐다. 또 후배 양성을 위한 부악문원을 7년전부터 운영하면서 다수의 문학상과 객원 작가들의 작품이 이곳에서 나왔다.
그래서 그런지 애정이 깊다. 또 후배들도 이런 역사와 추억이 담긴 곳을 정리하는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 하더라. 하지만 운영 부분 등에 대한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딪힌다. 단순히 내 사유가 아닌 공간이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새해 덕담 한 마디 부탁.
내부 통합이 무시되고 있다. 모든 것이 모래알처럼 흩어지고 있다. 적대 관계나 이해 차이는 어느 시대에나 있겠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이 더욱 격해지고 있다.
특히 새로운 시대의 도구인 인터넷이 그것을 묶는 것이 아닌 쪼개는 도구로 쓰이고 있다. 균열을 일으키고, 그 틈을 더 멀어지게 한다. 사회 통합이라는 것에, 내부적 결속에 관심을 돌리는 해가 되길 바란다.
송시연기자
이문열 작가는…
▲1948년 서울 출생
▲서울대학교 국어교육학과 중퇴
▲대표작 <사람의 아들>(1979), <젊은날의 초상>(1981), <황제를 위하여>(1982),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1990), <시인>(1991), <변경>(1994), <아가> (2000), <호모 엑세쿠탄스>(2006) 外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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