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불공정이 경제 발목… 정부, 상·하 투 트랙 정책 절실”
치솟는 전세금, 좁은 취업문, 나아질 기미 없는 경제 성장은 젊은 세대에 희망보다는 참담함을 안겼다.
새해가 밝았지만, 한국을 비롯한 세계경제 전망 역시 밝지만은 않다. 저성장 시대는 이미 시작됐다는 경고음도 곳곳에서 나온다.
한국 경제의 희망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한국 경제는 특권화 된 부조리, 편중된 부로 위기에 처했다며 잘못된 제도의 뿌리를 바꾸는 게 우선이라는 정대영 송현경제연구소장을 만나 그에 대한 답을 찾아봤다.
34년간 한국은행에서 금융안정분석국장, 프랑크푸르트사무소장, 한국금융연구원 교수 등으로 활동하다 현재 경제연구와 정책 제안, 아카데미 운영 등으로 바쁜 일정을 보내는 그는 “당연한 경제 상식이 비상식적으로 돌아가는 데 답답함을 느껴” 최근 ‘한국경제 대안 찾기’라는 책까지 펴냈다. 그가 말하는 바는 분명했다.
법과 제도의 불공정, 불평등, 부조리와 모순 등 우리 내부구조의 문제를 먼저 풀어야 경제도 살아난다, 아니, 상식적으로 돌아간다는 거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신간도 그렇고, 앞서 발간한 책에서도 우리 경제의 불균형, 불평등에 주목했다. 한국사회에서 소득 불평등이 심각한가.
그렇다.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을 이끈 데에는 3가지 작위적인 요소가 있다. 바로 물가, 환율, 부동산 가격이다. 이 3가지를 인상하면서 경제는 빠르게 성장했지만, 분배 구조가 악화했다. 물가가 빠르게 오르면 실물 자산을 가진 사람이 이득을 본다.
채무자도 채권자보다 이득이다. 고환율 정책은 수출업자에겐 이익이지만, 국내 소비자에게는 손해를 끼쳤다. 부동산 경기 부양 정책 역시 집 가진 사람에게 이익이 돌아가게 했다. 이 중 가장 부의 분배를 악화한 것은 부동산 정책을 통한 경기부양이다.
-어쨌든 규모로나 성장률로나 대한민국 경제가 좋아진 것은 사실인데.
한국의 영세 자영업자 소득이 포함된 노동소득분배율은 지난 1980년대 82%에서 2010년 초반 73% 수준으로 낮아졌다. 노동자와 영세 자영업자의 살림살이가 상대적으로 어려워지고 있다는 거다. 노동자와 영세 자영업자의 소득이 위축되면 생계유지와 빚 갚는 데 돈을 쓸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한국 경제 전체의 저축률이 낮진 않다. 2014년 국내 총저축률은 34.7%로 미국의 17.2%, 독일 26%, 일본 21.4%보다 크게 높다.
한국에서 저축 대부분이 가계가 아닌 기업 부문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잘사는 나라에서 왜 당신은 가난한가?’라는 질문에 답이 나온다. 경제가 활력을 잃지 않으려면 기업 부문의 소득이 가계로 더 많이 흘러들어 가도록 방안을 찾아야 한다.
-집권 4년차에 접어든 박근혜정부의 경제 정책을 평가한다면.
글쎄, (웃음) 초반보다 경제가 나아진 부문이 특별히 없는 것 같다. 박근혜정부 역시 과거 정부들처럼 물가, 환율, 부동산으로 경기를 부양하려 했다.
경기가 살아났다고 대표적으로 제시하는 지표가 부동산 거래 활성화다. 집값, 월세 등이 올라서 경기가 좋아지면 반대편엔 피해자가 있다.
우리나라 가계 보유자산의 70~80%는 부동산이고, 집값이 소득에 비해 지나치게 높다. 일본, 미국도 부동산 버블이 심했지만, 가계 보유자산의 30%에 그친다. 한국 부동산의 시가총액은 8천조원, 국내 GDP의 6배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부동산 가격이 10% 오르면, 800조의 자산가격이 상승하는 거다. 한마디로 집을 가지지 않은 이들의 부를 집을 가진 이에게 강제 이전 시키는 셈이다. 한국경제는 규모가 충분히 크고, 기업의 국제 경쟁력도 강하다.
양극화의 원인이 되는 물가, 환율, 부동산을 안정시키면서 성장을 견인하는 게 훌륭한 정부다. 과도한 내수침체 등으로 부득이하게 부동산 경기 활성화가 필요한 경우라도 지금처럼 부동산 투기 심리를 부추기는 방식은 피해야 한다.
-그렇다면, 부동산에 편중된 부를 해결할 방안은 있나.
우선 부동산에 대한 정상적인 과세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부동산은 세제상 특혜가 많다. 대표적으로 주택임대소득은 거의 과세가 되지 않는다.
근로 소득, 금융 소득, 사업 소득에는 모두 과세가 붙지만, 주택임대소득은 대부분 예외가 돼 있어 사회 공정성과 경제정의를 훼손시키고 있다. 주택임대소득은 연간 최소 50조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특히 주택임대소득은 공시지가 9억원 이하 1가구 1주택인 경우 임대소득이 아무리 높아도 비과세다.
1주택자가 자기 집을 월세로 놓고 자신은 다른 집에 전세를 살면서 임대수입을 올리기도 한다. 이러니 허리띠를 졸라매고 돈을 모아도 오른 전세금을 감당할 수 없고, 대출을 받거나 월세를 내야 한다. 주택임대소득은 1주택과 다주택자 등 구분없이 임대소득의 규모에 따라 차등 과세하는 게 맞다.
-수저 계급론, 헬 조선이라는 용어가 유행했다. 한국사회의 절망을 말하는 젊은층이 늘어나고 있는데, 역시 경제 문제인가.
당연히 경제문제다. 불평등 문제, 부의 대물림 등이 한국사회에 고착화 되면서 젊은 세대에 탈출구가 보이지 않게 된 거다.
지금은 과거보다 생활수준은 높지만, 미래가 더 나아질 거란 희망이 얕아졌다. 최근에 소득 불평등에 관해 고찰한 피케티 이론이나 동국대 김낙년 교수의 통계 자료를 봐도 한국의 상위 10% 소득집중도를 기준으로 한 불평등은 미국보다 훨씬 높다.
-이를 극복할 방안은 있나.
우선, 불평등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우리나라 상위 10%에 속하는 이들의 소득집중은 시장원리보다 법이나 제도에 의해 불공정하게 축적된 경우가 많다. 반면 영세 자영업자, 중소기업, 비정규직은 과도한 경쟁과 시장원리로 궁지에 내몰리고 있다.
이를 해결하려면 정부의 경제정책이 투 트랙으로 나아가야 한다. 상위 10%의 고소득자 등에게는 시장원리, 경쟁을 도입해 특권을 줄이고, 하위 80~90% 계층에겐 지원과 보호를 통해서 과도한 경쟁을 줄여주는 거다.
-영세 자영업자나 중소기업 등에 대한 지원과 보호는 ‘경제민주화’라는 큰 틀로 정치권에서도 주요하게 다루고 있다. 이와는 다른 해법이 필요하다는 건가.
진보 쪽에서는 하위계층에 대한 지원과 복지만 강조한다. 증세를 통해 이들에 대한 복지를 늘리자는 건데, 근본적인 대책이 되기엔 미흡하다. 어려운 사람에게 지원만 하면 문제의 반만 해결하는 것이다. 경제는 무한히 커지는 게 아니다.
지금 같은 저성장기에서는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아랫사람들에게 돌아갈 수 있는 몫이 없다. 보호를 받는 기득권층에는 경쟁을 도입해 다른 계층이 진입 할 수 있게 길을 터주고, 보호가 필요한 이들에겐 보호와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현재 선진국에서는 지극히 당연하게 시행되는 일들이다.
한 가지 사례를 들면, 여당에서는 의료산업 영리화로 의료산업 수출, 외국인 환자 유치 등이 필요하다고 한다. 반면, 야당에서는 의료 공공성이 무너진다며 반대한다. 둘 다 맞지 않다고 본다.
의료산업 영리화는 절대 못할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의사 수는 인구 10만명 당 2.2명이다. OECD 평균인 3.2명보다 3분의 1가량 부족하다.
의대생 수도 적다. 의사 수가 적은데 수출산업화까지 하면 국민 의료서비스 질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의사 수를 늘려 국민의 의료 서비스 질을 충분히 확보한 이후 수출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거다.
-FTA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한국경제가 세계시장에서 성장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FTA는 시대적인 흐름이다. 특히 한국은 개방으로 성장한 나라다. 이젠 FTA를 받아들이면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부문 간 불균형이 커지는 부문을 어떻게 보완하느냐다. 특히 FTA에 앞서 중요한 게 있다. 한국 경제의 문제와 해결방안을 내부에서 찾자는 거다. 한 국가가 부흥하거나 쇠퇴하는 것은 밖의 요인도 영향을 미치지만, 내부의 문제가 더 크다.
지금 한국 경제는 우리 안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FTA라는 외부 요인으로 돌파구를 찾으려는 것 같다. 결국엔 내부의 법과 제도, 불공정, 불평등, 부조리 모순 등 내부 문제 먼저 해결하는 게 우선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저성장에 접어든 세계 경제에도 맞설 수 있는 탄탄한 구조가 마련될 거라고 본다.
정자연기자
정대영 연구소장은…
△현(現)송현경제연구소장
△한국은행 인재개발원 주임교수
△한국은행 프랑크푸르트 사무소장
△한국은행 금융안정분석국장
△주요 저서
<한국경제 대안찾기(2015)> <백낙청이 대전환의 길을 묻다(2015)> <동전에는 옆면도 있다(2013)><한국경제의 미필적 고의(2011)> <신위험관리론(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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