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불안의 시대, 화가 나십니까?

우리는 흔히 청소년기를 질풍노도의 시기로 알고 있다. 누가 이러한 이론을 주장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감각적으로 듣자마자 동의하는 일설(一說)이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질풍노도의 시기가 청소년기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질풍노도와 같은 불안과 변화, 혼란의 시기가 누구든지 인생의 생애주기에서 몇 번이고 경험할 수 있다는 주장이 우세하다.

즉, 청소년들만 질풍노도와 같이 생애 방향타를 잃어버린 것 같은 불안정과 변화, 감성적 격변을 겪는 것은 아니다. 요즘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면 역시나 질풍노도의 시기가 청소년기에만 국한되지는 않는 듯하다.

세간의 말로, ‘북한군은 중1이 무서워서 못 넘어올 것이다’라고 할 만큼 내 아이가 청소년이 되면서 돌변하는 모습에 놀란 부모들이 자녀에 대한 우려와 놀람을 이렇게 표현하기도 하지만, 요즘의 사건·사고를 보면 중ㆍ노년기 성인이 저지르는 총기사고, 방화사건, 납치 살인사건, 자살사건 등을 보면 어디를 봐도 중1들이 저지르는 사건ㆍ사고 수준보다는 훨씬 심각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보고 소위 “분노조절이 되지 않는 사회”라는 등의 자평도 나오고 있지만 더욱 우려하는 점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일상적인 폭력의 수위가 나 자신을 떠나 사회로 향하고 있는 점이다.

우리는 지난 한 세대, 즉 30년 이상 지속적인 고도성장을 경험해왔다. 그러나 2000년 이후 우리는 ‘저성장’의 문구가 우리 삶의 구석구석에 파고들면서 이제는 변화가 곧 발전이라는 공식이 통하지 않은 지 오래다.

그러나 여기서 되짚어보면, 우리가 지난 한 세대 동안 겪었던 경제성장의 경험은 세계 어느 나라도 쉽게 경험하기 어려운 압축성장이다. 다시 말하면, 지금의 우리가 겪고 있는 저성장이 어쩌면 더욱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과정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기억이나 기대는 압축성장을 당연한 듯 생각하고 있으며 현실이 그렇지 않아서 더욱 짜증 나고 화가 나는지도 모른다. 더욱이 지난 압축 성장기에 있었던 ‘구조조정’이라는 용어가 기회와 확대, 성장을 위한 것이었다면, 이제는 위기, 감축, 축소 등의 의미를 내포하며 다가온다.

일 개인으로 보면, 대학생의 신분에서 사회초년생이 아닌 백수라는 단어가 더욱 먼저 올까 봐 두려워하기도 하고, 취업을 해도 구조조정의 여파로 언제 직장에서 나가라고 할지도 모른다.

내 기억으로는 과거의 어느 시기에는 프리랜서(freelancer)가 오히려 직장인의 로망으로까지 여겨졌던 시기도 있었지만, 지금은 소위 턱도 없는 소리다. 은퇴 후 여가생활을 어떻게 보낼까를 기대하기보다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를 누구나 고민하는 시대이다. 불안이 어느 누구를 비켜가기는 힘든 때인 것 같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또한 조망적으로 현실을 바라보면 변화의 시기이다. 불안하기는 하지만, 내 스스로를 다잡고 나가면 생애 방향타를 빼앗길 상황은 아니다. 나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식민지 국민이 되어 살아가야 하는 것도 아니고, 사변이나 전쟁의 소용돌이로 피난길, 난민이 되어 하루하루를 연명해야 할 수준은 더욱 아니다.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도 어려운 시절에 생겨난 구절이다. 어쩌면 우리 조상들이 어려울 때 웃는 얼굴과 긍정의 기운의 힘을 더욱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내 안에 있는 잘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와 가치, 삶에서 경험하는 긍정적 힘과 기쁨을 그 누군가가 아닌 나 자신이 만들어가고 성장시킬 때가 아닌가 한다. 불안의 시대, 더욱 나에 대한 긍정의 힘, 남에 대한 배려의 힘이 필요해 보인다. 다 같이 누구나 힘들기 때문이다.

송민경 경기대학교 청소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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