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론] 혁신은 정의(Definition)에서 시작한다

필자가 박사학위과정을 위해 첫 대학원수업에 참여했을 때 수업시간을 통해 경험한 것이 있다.

우리가 증명이 불가능은 하지만 확실히 알 수 있는 몇 가지의 연산규칙을 통해 1+2=2+1과 같은지, 2x(3+4)=6+8인지와 같이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고 지내던 것을 연산규칙을 정의하면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었다. 마치 아이가 언어를 처음 배우듯이. 그러나 이것의 중요성을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학사와 석사과정의 수업시간을 통해 너무나 당연하게 넘어간 이론들의 바닥에서 다시 그 이론들이 왜 이렇게 형성됐는지를 확인하며 알아가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길이의 변화를 어떻게 나타낼 수 있는지, 면적과 부피의 변화가 일어나면 어떻게 변화를 묘사할 수 있는지 등 가장 기본적인 정의를 내리면서 그 바탕 위에 새로운 정의들을 쌓아가는 것이 학문이었다.

맨 처음이나 중간에 내린 정의가 흔들린다면 그 이론을 얼마나 높이 쌓았던지 상관없이 와르르 무너지게 되며, 그 이론은 종이 쪼가리에 불과한 것이 되는 것이다. 문제는 얼마나 기본으로 삼고 있는 정의가 튼실한가에 달려 있다.

또한 이 정의는 검증을 받아야 한다. 혼자만 맞다고 주장하고 검증이 안 된다면 가설일 뿐이다. ‘시간은 상대적이다’라는 아인슈타인의 이론 또한 다른 과학자의 검증을 통해 확인됐기에 받아들일 수가 있었다.

과거의 인천시와 현재의 인천시의 모습은 다르다. 과거를 무시한 현재는 존재할 수 없지만, 미래를 위한 인천시의 모습은 현재와 같을 수도 다를 수도 있다. 이것은 새로운 인천시의 미래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달려있다. 중간의 수많은 논의는 있겠으나 바라는 바는 단순했으면 한다.

그리고 인천시민이 동의할 수 있는 가치였으면 좋겠다. 마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수많은 수식의 중간과정은 들어가나 마지막은 E=mc2으로 귀결됐고 그 결과를 다른 과학자들이 증명하며 그 이론에 동의한 것과 같다.

이제는 지자체의 시대이다. 지자체가 어떤 정의를 내리느냐에 따라 새로이 인천시민이 되는 사람도 떠나는 사람도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이렇게 정의내린 모습이 널리 알려져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었으면 한다.

이러한 전개과정은 기업이나 다른 조직에도 동일하게 적용이 된다.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공감대의 상실이 혁신할 때를 자각하는 것이라면, 조직이 나가야 할 바를 명확히 정의를 새로이 내리는 것이 혁신의 출발점이라 하겠다. 그 정의가 구성원의 공감을 얻을 때 그 조직은 생명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현재는 지속성(sustanability)이 중요한 시대이다. 조직 구성원의 합심이 없이는 지속성은 유지할 수 없다. 명량의 이순신장군이 끝까지 홀로 싸우면서 얻고자 한 것이 구성원의 싸우고자 하는 공감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공감으로 명량은 해전사에 빛나는 새로운 해전을 정의하게 된 것이다. 혁신은 정의(definition)를 새로 내리면서 시작한다.

이재성 인하공업전문대학 화공환경과 교수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