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42km를 완주하고 나면 피곤이 가시고 새 힘이 생기는 경우가 있죠. 때론 황홀감까지 맛보게 되는데, 이처럼 격한 운동 뒤에 느끼는 몸의 상태를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라고 하죠.
러너스 하이처럼 남을 돕는 과정에서 즐거움과 행복감을 느끼고 새로운 활력과 정서적 포만감을 맛보는 상태를 헬퍼스 하이(Helper’s High)라고 합니다.
세답족백(洗踏足白)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옛날에는 빨래를 발로 밟으면서 했는데, 남의 빨래를 해주니까 내 발꿈치가 희게 됐다는 겁니다.
헬퍼스 하이나 세답족백이나 다 같은 뜻입니다. 나눔과 봉사는 결국 자신을 위하는 일이라는 거죠” 지난 23일 교육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이 공동주최한 대한민국 교육기부대상을 수상한 경인여자대학교 류화선 총장은 ‘왜 나눔과 봉사인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민선 제4,5대 파주시장으로 이름을 날리던 그가 대학총장으로 변신하더니 이번에는 대학가에서 화제를 뿌리고 있다. 2014년을 갈무리하는 29일 류화선 총장을 경인여자대학교 집무실에서 만나 ‘나눔과 봉사’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Q 대한민국 교육기부대상은 어떤 상인가.
A “아이들에게 꿈과 끼를 찾아 주는 행복교육을 실천하고 창의적 인재 육성에 기여한 기관에 주는 상이다. 교육기부에 관한 한 국내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알고 있다”
Q 경인여대가 수상하게 된 배경은.
A “2013년과 2014년 두 해 동안 총 8회에 걸쳐 인천지역 내 19개 중·고교생 2천여 명에게 직업체험을 시킨 공로가 인정된 것 같다.
이들 고교생은 자신의 적성과 진로를 찾지 못해 방황해 왔는데, 경인여대는 승무원 유치원교사 호텔리어 영양전문가 패션디자이너 등 총 13개 분야를 경험케 하는 재능기부를 했다. 이 같은 재능기부 활동 횟수와 수혜자의 수도 많았지만, 프로그램 구성 및 내용 면에서 탁월했다는 게 심사위원들의 평가였다고 한다.”
Q 예를 들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준다면.
A “예컨대 경인여대 아이벨르헤어과 학생들이 미용에 관심 있는 고등학생들에게 미용기술을 가르쳐 주고 진로상담을 해 준다면 그게 바로 교육기부다. 학생들이 자신이 전공하고 있는 분야에 갖고 있는 재능을 나눠준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Q ‘경인여대하면 봉사’라고 할 정도로 다양한 봉사프로그램을 하고 있다는데.
A “우리 대학은 매년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에 학생들에게 해외봉사를 의무화하고 있다. 학교가 설립되고 개교한 이래 22년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지구촌 사랑나눔 해외봉사단’을 파견하고 있다.
주로 동남아와 중앙아시아 각국에 나간다. 한국어반 운영 등 각종 재능기부활동을 벌인다. K-POP과 고전무용단도 함께 파견해 한국문화와 전통을 널리 알리고 있다”
Q 올 겨울방학에도 파견하나.
A “그렇다. 지난 22일 이미 동계해외봉사단 발대식을 가졌다. 중국 베트남 필리핀 라오스 캄보디아 키르기스스탄 몽골 등 국가에 200여 명의 학생들이 나간다”
Q 총장도 참여하는지.
A “물론이다. 나도 4~5개국 방문할 계획이다. 봉사하는 학생들을 현지에서 지도하고 격려하기 위해서다”
Q 현지지도는 어떻게 하나.
A “해외봉사 발대식이나 현지에서 봉사하는 학생들에게 내가 꼭 하는 말이 있다. 제일 먼저 하는 말이 사고 나지 않게 안전에 신경 쓰라는 것이다. 그리고 출국하기 전에 반드시 세계지도를 펴 놓고 공부를 하라고 한다. 해외봉사 가는 곳이 어딘지, 그 나라의 동서남북 인접 국가는 어디인지를 확실하게 알아두고, 그 나라의 풍습 등을 공부하고 떠나라는 것이다.
또 봉사 현지의 국가가 어렵게 못산다고 해서 우쭐해선 안 된다는 점도 이야기해 준다. 과거 우리가 못 살 때 선진국의 도움을 받았던 만큼 어려운 아시아 이웃 나라 친구들을 돕는 일에 긍지를 갖는 건 좋지만, 우리가 과거 선진국에 진 빚을 갚는다는 생각을 하라는 것이다. 해외봉사는 작은 외교인 만큼 학교 이미지나 대한민국의 품격에 손상되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점도 강조한다.”
Q 학생들에게 아주 작은 봉사라도 당장 실천하라고 말하고 있다는데 이유가 무엇인가.
A “백문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봉사는 백견불여일행이다. 백번 보는 것보다 한 번 해보는 게 좋다는 거다. 마더 테레사가 이런 말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사랑은 행동으로 이어지고 그 행동이 봉사다’라고. 행동이 중요하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Q 한센인 합동결혼식 주례도 맡은 걸로 알고 있다.
A “우리 경인여대는 다문화 가정 등 어려운 이웃을 위해 작은 결혼식을 해 주고 있다. 한센인 합동결혼식은 올해로 두 번째 치렀는데, 웨딩플래너학과 학생들의 재능기부로 지난 10월 학교의 컨벤션센터에서 있었다. 최고령 85세 최연소 55세 등 6쌍의 한센인 합동결혼식은 아주 특별한 결혼식이었다. 사회와 단절되어 힘들게 살아온 분들의 결혼식이어서 가슴이 찡했다.
Q KBS 라디오방송에서 우연하게 들었는데, 총장님 주례사가 히트를 쳤다는데.
A “연세 높고 이미 오랫동안 삶을 같이해 온 노부부들에게 뭐 할 말이 있겠나. 그래서 ‘다섯 손가락 사랑’을 하시라고 했다.
엄지로 내 짝이 최고임을 표현하고, 검지로 내 짝을 가르켜 사랑을 표현하고, 중지로 내 짝을 험담하는 자에게 한 방 먹이고, 내 짝의 약지에 반지를 끼워 사랑을 확인하고, 새끼손가락을 걸어 남은 여생을 약속하라고 한 것이 그만 매스컴을 탔다”
Q 경인여대가 나눔과 봉사를 열심히 한 이유는.
A “우리 경인여대는 기독교 정신에 입각해 설립된 학교다. 기독교 정신이 무엇인가. 사랑 나눔 희생, 쉽게 말해 그런 거 아닌가. 그리고 우리 학교는 인성교육을 중시한다. 인성교육 중 하나가 나눔과 봉사다. 뿐만 아니라 우리 대학교는 연구중심대학이 아니다.
교육중심대학으로 여성전문리더를 양성하는 게 목표다. 그런데 리더는 뭐 하는 사람인가.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사람이다. 나눔과 봉사도 따지고 보면 역지사지하는 일이다. 우리 경인여대가 사회봉사에 열심인 건, 이렇게 설립이념에도 맞고 교육목표에도 부합하는 것이기에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Q 봉사 중에서도 특히 재능기부에 특화돼 있는 것 같은데.
A “교육기관인 학교의 학생들이어서, 더구나 여학생들이어서 노동봉사보다는 재능봉사가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또 재능은 자기 자신만을 위해 써서는 안 된다고 보는 것도 하나의 이유다.
내 재능은 내 것이며, 그 결과로 얻은 성과 역시 내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만이다. 재능은 창조주가 나라는 존재에게 세상을 위하고 인류를 위해 사용하라고 전해준 것 아니겠는가. 때문에 재능을 사유화해서는 안 된다는 게 내 신념이다. 리더가 될 학생들에겐 특히 그렇다”
Q 봉사도 봉사지만 총장취임 이후 경인여대가 크게 발전했다는데 자랑 좀.
A “경인여대는 이제 2,3년제 대학이 아니다. 간호학과의 경우 올해 이미 4년제로 학생을 모집했고, 25개 학과 중 8개 학과는 학생들의 희망에 따라 4년제 학위과정에 입학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우리 경인여대는 다양한 학제를 둔 종합대학교다. 나는 적어도 그렇게 생각한다. 취업률도 전국의 여자대학 중 1위, 인천·부천지역의 전체 대학 가운데서도 1~2위를 차지하고 있다.
신입생모집경쟁률도 수시와 정시를 통틀어 12~15대 1 의 높은 경쟁률을 보이고 있다. 지난 여름에는 대한민국정부가 특성화 대학으로 선정, 집중지원하고 있다. 장학금 수혜가 특히 많아 이미 실질적으로 반값등록금을 실현한 학교다.
학생 수도 내가 총장으로 하기취임전보다 600여 명이 더 늘어 5천 명 시대를 열었다. 한마디로 경인여대는 똑똑한 학생이 배우고 뛰어난 교수가 가르치며 따뜻한 학교가 품어 주는 ‘똑·뛰·따 취업 명문대학’이다”
Q 총장임기를 마치시면 하고 싶은 일은.
A “ ‘사단법인 나비여행’을 만들어 운영하고 싶다. 나누고 비우면 여러 사람이 행복한 그런 사단법인 말이다. 개인적으로도 나를 비우면 여생이 행복할 테니 꼭 하고 싶은 일이다”
파주= 김요섭 기자
그는 누구인가?
경기 파주출신(66)이다.
고향에서 초등학교 졸업후 양정 중고와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건국대에서 명예행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ROTC 10기로 전방에서 군생활을 했다.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비서실 근무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삼성전자부장을 거쳤다.
늦깎이 평기자로 한국경제신문에 입사, 편집국장과 편집이사를 역임했고 한경TV대표이사 사장을 지냈다.
민선 제4,5대 파주시장과 공기업(그랜드 코리아 레저)대표이사 사장을 역임하고, 2013년 초부터 현재까지 경인여대 총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전혀 다른 분야 전혀 다른 직종으로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면서도 가는 곳마다 큰 족적을 남기고 있다.
특히 시장 재임 시절 대한민국 북쪽 끝 변방의 낙후된 군사도시 파주를 ‘시민주의 행정’이란 이름으로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를 건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파주사회에서는 지금도 파주발전의 역사를 류화선 시장 전(前)과 후(後)로 나누고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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