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이 나라, 참 별로다

“참 별로다.” 친구가 한국을 떠나면서 한 말이다. 이 나라가 별로라서 돌아오고 싶지 않다 했다. 먼 이국땅에서 겪을 고단함보다 “여기 계속 사는 것이 더 별로”라 했다.

그 말이 이해가 된다. 생뚱맞지 않다. 기록 갱신을 위해 가입한 것이 분명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통계로도 한국사회 행복도는 최악이다.

자살률 1위, 아동청소년 만족도 최하위, 노동시간 세계 2위, 수면시간은 꼴찌다. 십년 전쯤 덴마크에서 인턴으로 왔던 마리아의 말이 생각난다. “한국은 참 스펙터클해서 재밌어.” 덴마크에서 십년에 한 번도 터질 것 같지 않은 사건이 일주일 두서너 번 터진다 했다. 마리아가 있다면 ‘오 마이 갓. 요즘은 하루 두서너 건 터지네’ 하겠다.

한 해를 뒤돌아보니 세월호 침몰 후에도 장성요양병원, 판교환풍구, 담양 팬션…. 크게 다치거나 사망한 사건이 즐비하다. 여기에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 수는 어떤가. 지난해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1천929명이 산재로 사망했다. 하루 5.2명이 산재로 죽어갔다.

물론 OECD 1등이다. 숨겨진 통계로 따지면 10배에 이른다는 주장도 있다. 살아남은 것이 용한 나라에 살고 있다. 그야말로 적자생존 밀림에서 각자 도생할 수 밖에 없는 대한민국이다.

지난 몇 주간 한-중FTA가 체결되었고, 한-호주FTA, 한-캐나다FTA가 언제인지 모르게 체결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FTA강국, KOREA’라는 캐치프레이즈가 걸린 정부 홈페이지처럼 나라간 장벽을 넘어 자본은 깡충깡충 이동 중이다.

그 아래 얼마나 많은 농민과 중소상인들 목숨이 경각에 휘둘릴지 모른다. 물론 여전히 잘살고 앞으로도 잘 살 전망인 대자본에게는 엄청난 이익이 발생할 것이다. 그런 이익이 나라 전체 이익인양 이야기 될 것이다. 하등 상관없는 세 모녀는 유서를 쓰고 자살하며 가난한 노인은 국밥 값만 남기고 사라질 뿐이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대법원 판결은 정리해고가 여전히 기업 권한임을 확인시켜줬다. 3천명 해고는 만여 명 가족들의 생계와 연관되어있으며 그로 인해 스물 넘는 사람이 이승을 등졌다는 것은 별로 중요치 않다.

삼성SDS 상장으로 이재용 등 자제분들이 300∼430배에 달하는 시세차익으로 5조원의 돈을 벌었다. 이 돈만으로 앞으로 써야할 상속 및 증여에 들어가는 세금을 대부분 납부할 수 있다 하니, 돈으로 꿩도 먹고 돈으로 알도 먹고 참 좋은 세상이다.

그런데 돈이 돈을 낳는 과정이 영 꺼림칙하다. 돈 앞에서 국가는 무엇을 하고 있고 법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도대체 믿음이 안 간다. 쌍용차든, 삼성이든. 여기에 한 나라 군사주권을 결정하는 전시 작전권은 미국에게 받기 싫어 안달 났다. 환수시점을 연기하고 연기하다 결국은 기한 없이 당분간 안 받겠단다. 판타스틱, 대한민국.

세월호 참사 이후 “이게 나라인가”라는 한탄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그러나 나라는 맞다. 카카오톡뿐만 아니라 전국 모든 운행 차량에 대한 실시간 감시시스템이 구축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말이다. 국정원의 활약은 어떻고! 국가주의가 강화되는 것을 보니 ‘국가 맞다’는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 사는 국민들은 “이 나라, 참 별로다.”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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