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인터뷰] 최창한 경기도어린이집연합회장

“누리과정 예산 끊기면 어린이집 줄폐업… 보육대란”

지난 1994년 당시 안산 지역 최대 규모의 태권도장을 운영했던 한 태권도장 관장은 끈으로 매단 열쇠를목에 건 채 맞벌이 부모를 기다리고 있는 동네 아이들을 위해 도장 한켠에 조그마한 놀이 공간을 만들어줬다.

부모들의 제대로 된 돌봄을 받지 못하고 있는 아이들을 위한 선행이었지만, 결과는 ‘무허가 불법시설 운영’이라는 오해와 경찰 고발로 돌아왔다.

결국, 그 태권도 관장은 아이들을 떳떳하게 돌보기 위해 보육 분야에 뛰어들었다. 평생 태권도를 업으로삼고 살아왔던 체육인에서 보육 전문가로 변신한 최창한 경기도어린이집연합회장의 이야기다.

지난 11일 (사)경기도어린이집연합회 사무실(수원시 권선구호매실로)에서 최 회장을 만났다. 태권도 공인 7단의 ‘무도인’답게 군살 없는 체형을 가진 최 회장의 언변에서는 11년간 전국어린이집연합회장(3년)과 경기도어린이집연합회장직(8년)을 역임해온 보육 전문가다운 강한 확신이 묻어 나왔다.

부모들이 안심하고아이들을 맡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데 앞장서고 있는 최 회장과 최근 보육계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누리과정 예산 삭감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눴다.

Q 최근 ‘누리과정’ 예산 삭감 여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누리과정이 뭔가

A 지난 2012년 이명박 정부가 ‘무상보육’을 발표하면서 유치원과 어린이집 간 차별적으로 운영돼 온 교육 프로그램을 하나로 통합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다니는 만 3세~5세 유아들을 대상으로 한 공통 교육 프로그램이 생겨났는데 그게 바로 ‘누리과정’이다.

Q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이나 어차피 똑같은 보육시설 아닌가

A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같은 개념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운영방식과 지원체계 면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다.

우선, 유치원은 교육부가 지원, 관리하는 데 반해 어린이집은 보건복지부의 관리 감독으로 운영된다.

또 유치원이 만 3세~5세의 유아들을 교육하는 시설인 데 비해 어린이집은 만 0세~5세의 영ㆍ유아를 교육하고 돌보는 역할을 담당한다.

어린이집이 유치원에 비해 맡는 아이들연령대의 폭도 넓고 운영 시간도 상대적으로 길다고 이해하면 된다. 그런 만큼 아이를 돌보기 어려운 맞벌이 부부가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Q 그렇다면 누리과정은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공통으로 운영되는 공통 교육과정이라는 말인데,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A 누리과정이 첫 실시된 지난2012년 당시에는 교육부가 지방세교부금을 활용해 만 5세 유아에 대해서만 예산을 지원했다.

이후 만 3세~4세 유아를 대상으로 단계적으로 지원을 확대해 오는 2015년까지 만 3세~5세 유아들을 전액 무상지원한다는 계획이었다. 현재 70%수준의 지원이 이뤄지고 있는데 내년까지 100% 무상 지원을 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은예산 문제 등으로 이뤄지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누리과정 예산 지원 상황을 살펴보면 유아 1명당 매달 22만원씩을 지원하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당초정부 발표대로라면 2014년 24만원, 2015년 26만원으로인상돼야 하지만 현재까지 22만원으로 예산이 동결된 채 더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경기도를 비롯한 강원도, 제주도 등 일부 지자체들이 어린이집에 현재 수준의 누리과정 예산을지원하는 것에도 어려움을 내비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예산이 끊기는 최악의 상황은 없을 것으로 믿고 있지만 만약 지원이 끊긴다면 그야말로 ‘보육 대란’이 현실화 될 것이다.

Q 보육대란은 어떤 사태를 말하는 건가

A 누리과정 예산이 끊기게 되면 도내 1만3천600여곳의 어린이집 중 5천여 곳 운영에 심각한 차질을 빚을 것으로 예상된다. 운영난으로 아예 문을 닫아버리는 어린이집도 속출할 것으로 보인다.

또 도내 8만여 명의 보육교사 중 5만여 명 가량이 실직 상황에 처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최저임금 밖에 받지 못하고 있는 보육교사들이 줄줄이 직장을 잃게 되는 최악의 사태만큼은 막아야하지 않겠는가.

Q 어린이집 연합회장으로서 유치원과의 형평성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온 것으로 알고 있다

A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막론하고 유아 1명 당 22만원씩의 누리과정 예산이 지원되고 있는 만큼 큰 차이가 없는것으로 오해하기 쉬운데 실제 내용을 알고 보면 완전히 다르다.

우선 유치원의 경우 5시간을 기준으로 교육이 이뤄지는 데 반해 어린이집은 교육과 보육 등을 합쳐 12시간 동안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시간상으로만 따져도 어린이집이 훨씬 많은 비용이 소요될 수밖에 없는 셈이다.

그러나 현실은 유치원이 급식비(5만원)와 종일교육비(7만원) 명목으로 10여만원의 추가 지원을 더 받는 데 반해 어린이집에는 22만원 이외의 어떠한 추가 지원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Q 많이 속상할 거 같다

A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예산 문제로 인한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것은 어린이집 운영자들과 보육교사들이다. 지난 2012년 국책연구소에서 만 5세 유아에게 최소한의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표준보육금’에 대해연구한 결과, 유아 1인당 29만2천원ㆍ영아 1인당 90만원의 비용이 소요된다는 결과가 나왔다.

결국 현재 어린이집에 지원되는 예산으로는 최소한의 교육서비스 조차 제공하기 어려운 셈이다. 대다수 어린이집이 부족한 비용으로 교육 서비스 수준을 맞추려다보니 무리가 따르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최근 어린이집과 관련한 언론 보도를 보면 먹거리 부실, 관리 미흡, 폭리 등 부정적인 내용이 많은데, 이 모든 문제들은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점과밀접한 관련이 있다.

여기에 누리과정 예산 지원이 어렵다는 말까지 나오면서 민간 어린이집의 어려움은 더욱 커지고 있다. 정원이 넘쳐 아이를 받지 못하는 유치원은 즐비한 반면 대다수 어린이집은 원아 모집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다.

사실 체계상으로만 보면 어린이집이 유치원에 비해 못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가령, 유치원은 원장의 재량에 의해 많은 것들이 좌지우지되는 데 반해 어린이집은 보건복지부의 평가인증을 받아야 하는 등 엄격한 관리 감독이 이뤄지고 있다. 어린이집의 이미지가 자꾸 좋지 않은 방향으로만 인식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다.

Q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A 보육 시스템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야 한다. 현재는 보육 예산을 유아 개개인에게 지원하는 형태로 운영되고있는데 현재 예산으로는 감당할 수가 없는 게 사실이다.만약 어린이집 운영비와 인건비를 국가가 지원하는 형태로 패러다임을 전환한다면 현재 예산으로도 충분히 효율적인 보육이 가능하다.

실제, 현재 운영되고 있는 국공립 어린이집의 경우 학부모들이 자녀를 서로 보내지 못해 안달이 날 정도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만약 아이들 개개인별로 지원되는 예산을 민간어린이집의 인건비, 운영비 등으로지원하게 되면 민간어린이집이국공립어린이집과 같은 수준의보육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된다. 자녀를 어린이집에 보내지않기를 원하는 부모들은 보육 수당을 타갈 수 있도록 운영하면된다. 막연한 밑그림이 아니라지난 10년간 한국아동미래연구소에서 직접 연구한 내용이다.

Q 경기도에 당부하고 싶은 말도 많을 거다

A 우선, 올해 치러진 6ㆍ4지방선거에서 남경필 도지사를 비롯한 후보들이 무려 18개 항목에 달하는 보육 관련 공약들을 내세웠다. 하지만 선거가 끝난 뒤 반년이 지났음에도 아무런 조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예산 문제가 걸려 있는 만큼 당장 모든 공약을 실천해달라는 뜻은 아니지만 반드시 이뤄져야 할 문제들이 있다.

Q 하나만 딱 꼬집어 얘기한다면

A 대표적인 것이 ‘영아반 반당 운영비’ 지원 편성이다. 만0세~2세의 영아의 경우 영아 3명당 최소 1명의 보육교사가 붙어야 한다. 이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의 문제다. 특히경기도의 경우 어린이집 1만3천600여곳 중 9천곳 가량이 영아반을 운영하고 있다.

만약 매달 30만원씩 지원되는 영아반 반당 운영비가 지원되지 않는다면 민간어린이집의 정상 운영과 보육교사의 직업 유지가 어려워지는 상황이 연출될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는 우선대화와 소통의 장이 마련돼야 한다.

박민수기자

사진=김시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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