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안농군학교 양평시대 개막

“오늘의 번영은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라’는 김용기 선생의 가르침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습니다. 그런 결의로 다시 흐트러진 마음을 다지고 제2의 도약을 이뤄야 합니다.”

22일 오후 2시 양평군 지평면 옥현리 제1가나안농군학교(이하 가나안농군학교).

마을 주민들이 일제강점기 철광석들을 캐는 광산이 있다는 뜻으로 ‘칠보산’이라고 ’부르는 야트막한 야산 기슭 6만6천여㎡으로는 쉴 새 없이 교육생들을 태운 관광버스들이 도착하고 있었다.

한 버스에서 내린 교육생 김모씨(57)는 “경제가 이처럼 주춤하고 있는 까닭은 국민들을 결집하는 아젠다가 없기 때문”이라며 가나안농군학교가 중심이 돼 다시금 절약과 겸손의 마인드로 정신 무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내린 비로 더욱 짙어진 형형색색의 색깔의 나무들이 빼곡하게 들어선 칠보산 아래 중턱에는 200명이 한꺼번에 교육할 수 있는 대강당과 소강당 2곳, 행정동, 식당 건물을 비롯해 2층 규모의 남녀 기숙사(42개방·1방 5인실) 등 4개 동의 교사(校舍)들이 산뜻하게 단장을 하고 교육생들을 맞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실제로 이날 오전부터 대한노인회를 비롯한 단체들과 대기업 임직원 등 200여명의 교육생들이 속속 가나안농군학교를 찾았다.

대기업들의 신입사원 교육부터 대학 교직원 교육, 대한노인회 노인지도자역량과정 등 교육일정이 연말까지 빼곡하게 잡혀 있는 실정이다.

양평군 용문‘‘면과 여주시 대신면을 잇는 341번 지방도 한켠에는 가나안농군학교를 알리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고, 갓 포장된 진입로를 1㎞ 남짓 오르면 최근 내린 비를 맞고 더욱 짙어진 형형색색의 단풍들이 이방인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지난 2012년 9월부터 시작된 교사(校舍) 이전공사가 2년여만인 최근 완공되면서, 하남시대를 마감하고, 양평시대를 열고 있다.

비록, 아직까지 책상과 걸상, 소파 등 집기들은 완전하게 정리되지 않고 어수선한 분위기이지만, 교육 프로그램은 이미 지난 17일부터 진행되고 있었다.

칠보산 중턱에는 설립자인 고 일가(一家) 김용기 선생(1909~1988)의 생전 자주 강조했던 문구(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라)가 적힌 비석과 수업 시작과 끝을 알리는 개척종(開拓鐘) 2기 등도 설치됐다.

이런 가운데, 사무실 배치는 끝났지만, 각 사무실 공간들에 들여놓을 집기들은 아직 짐상태에서 풀려지지 않고 있다.

웬만한 집기는 하남에서 쓰던 것을 그대로 가져왔지만, 식당인 ‘가나안 영양실’은 모 주방 관련 기업으로부터 기증받았다.

한 직원은 “아직은 임시정부처럼 분위기가 질서정연하지 않고 어수선하지만, 곧 정리가 끝나 교육생들이 안정적인 분위기에서 교육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가 김용기 선생의 아들인 김평일 교장은 “에티오피아 등 수많은 개발도상국 공무원들이 새마을운동의 정신을 배우기 위해 저희 학교를 찾고 있다”며 “개척시대, 치약은 3㎜, 비누칠은 3번 등 치약이나 비누 한줌도 허투루 쓰지 않았던 농민들의 근검정신을 바탕으로 이제 다시 일어서야 한다”고 말했다.

학교 측은 다음달 28일 준공식을 열 예정이다.

한편, 가나안농군학교는 지난 1962년 설립된 뒤 강산이 6차례 바뀌는 동안 지구촌의 유일무이한 농군(農軍) 사관학교로 국내는 물론, 세계 곳곳에 참 농군들을 배출해왔으며, ‘근로ㆍ봉사ㆍ희생’의 이념과 ‘알도록 배우자, 몸바쳐 일하자, 겸손히 섬기자’를 교훈으로 절약ㆍ개척정신을 배웠고, 새마을운동의 모태가 됐다.

양평=허행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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