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1992년에 인구 10만 명당 8.3명에서 2012년에는 29.1명으로 증가했고,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2.5명의 2.3배에 해당된다.
또한 하루 평균 42.6명, 연간 1만5천여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고 한다. OECD 회원국 중 9년 연속 자살률 1위라는 불편한 진실은 매우 불명예스럽고 부끄러운 일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충격적인 사실이 우리의 자화상임에도 불구하고 그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생활지도 차원 넘어 학문 중심으로
그 동안 우리나라는 양적팽창과 급속성장이라는 가속페달을 작동시켜 눈부신 발전을 이루어 경제규모 세계 14위 국가를 건설했다.
그러나 초고속 압축 성장 과정에서 생명존중과 안전에 대한 관심과 투자는 소홀한 측면이 있었다. 이제는 1인당 소득 3만 달러를 내다보는 국가답게 생명존중과 안전에 관심을 기울여 안전의식을 확산시켜야 한다. 생명존중에 대한 인식변화와 함께 철저한 안전교육으로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존중의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먼저, 범교과 학습주제에 생명존중교육이 추가돼야 한다. 교육과정에서 범교과 학습주제로 되어 있는 인성교육, 진로교육, 양성평등교육, 다문화교육, 문화예술교육 등이 그 각각을 보면 모두 중요하고 역점을 두어야 할 가치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 모든 가치들이 생명이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명이 있을 때 비로소 중요하고 가치 있는 주제들이다. 이에 비해 그 바탕이 되는 생명존중교육은 상대적으로 소홀하다. 범교과 학습주제에 들어있지도 않고 단순히 생활지도에 의존하고 있다.
이제는 생활지도 차원을 넘어 교육과정의 교과 및 창의적 체험활동에서 생명존중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모든 학문의 중심에는 인간이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 사람 중심의 따뜻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각 교과와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을 활용해 내 생명의 소중함(자살 예방), 타인 생명의 존엄성(언어·신체·성폭력 예방), 가족에 대한 사랑, 이웃 생명의 가치, 생명 지킴이 활동 등을 전개해야 한다.
다음은, 생명존중교육 교재를 개발 보급해야 한다.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생명존중교육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청소년들의 눈높이에 맞춘 전문적인 생명교재가 필요하다.
교재에는 인간 생명의 시작과 존엄부터 인간의 몸을 이해하고 성의 의미와 가치, 사랑과 책임 등이 포함되어야 한다. 또한 나 자신의 소중함에 대한 내용을 삽입하여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나 자신이고 생명이며, 나를 잘 지키고 사랑해야 다른 사람도 나를 사랑하고 나도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음을 가르쳐야 한다.
마지막으로, 체험중심의 생명존중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학습(學習)이란 배우고 익힌다는 말 그대로, 배우기(學)만 하고 익히지(習) 않으면 몸에 체질화(體質化)되지 않는다. 기본과 원칙을 배워서 알지만, 이를 실천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특히 안전의식은 어려서부터 가정과 학교에서 교육을 통해 습관이 형성되어야 생활화될 수 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자동으로 대처할 정도의 안전습관이 몸에 배도록 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편리함과 효율성을 중심으로 급속한 발전을 거듭하고 있지만 안전의식 수준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안전불감증에 빠져있다. 생명을 지켜주지 못하는 제도나 기구, 생명존중의 진정성이 없는 가르침이나 주장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진정성 없는 가르침 의미 없어
우리에게는 ‘홍익인간’에서부터 화랑도의 ‘살생유택’, 동학의 ‘인내천’에 이르기까지 훌륭한 생명존중 사상이 있었다. 우리교육은 이런 생명존중의 전통을 계승하고 현대화하고 내면화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런 점에서 경기도교육청이 생명의 소중함을 가르치는 인성교육에 중점을 두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지금 우리 교육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생명존중교육을 강화하여 안전불감증으로부터 탈피하는 것이다.
정종민 성남교육지원청 교수 학습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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