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관심에 깜짝… 평창올림픽 좋은 성적으로 보답할 것”
그 중심에는 ‘컬링 전도사’를 자임하며 불모지나 다름없던 대한민국 컬링을 세계 4강과 첫 올림픽 출전으로 이끈 정영섭(56) 경기도청 국가대표팀 감독이 자리하고 있다. 축구선수 출신으로 축구ㆍ역도ㆍ사격 감독 등을 역임하면서 맡는 팀마다 전국 정상으로 이끌었던 그는 지난 2000년대 초부터 컬링의 매력에 푹 빠져 경기도컬링연맹 전무이사와 경기도청 팀의 무보수 감독으로 봉사하면서 한국 컬링을 반석 위에 올려 놓은 장본인이다.
현재 고등학교 교감이기도 한 그는 소치 동계올림픽을 마치고 지난달 22일 귀국, 막바로 경북 의성에서 열린 전국동계체전에 출전해 경기도의 종목 4연속 우승을 이끌었다. 지난 28일 경북 의성컬링장에서 정영섭 경기도청 감독을 만나 그의 남다른 컬링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컬링이 소치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많은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면서 사랑을 받았다.
A. 경기도청이 출전한 컬링 국가대표팀은 이번 소치 동계올림픽 메달권 진입이 최대 목표였다. 하지만, 목표치에 한참 못 미치는 3승6패라는 저조한 성적으로 국민들에게 실망감을 안긴 것 같아 송구스럽다. 팀 스스로도 불만족한 결과였고, 컬링 강국과의 실력차를 새삼 느낄 수 있는 올림픽 무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컬링이 많은 국민적 관심을 받고 있다는 것에는 부담스럽기보다는 놀랍고 감사한 마음이다. 2018년 평창 올림픽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이 같은 관심은 앞으로 컬링 발전의 초석이 됨과 더불어 우리 팀이 더욱 분발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Q. 국내에 컬링이 도입된 지 20년도 못됐고, 팀 수도 북유럽이나 북미, 중국, 일본 등에 비해 현저히 적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사상 첫 세계선수권 4강 진출을 이끌었고, 첫 올림픽 출전에서 3승을 거뒀는데 비결은.
A. 2012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는 ‘두려움’이라는 단어를 몰랐다. ‘꼴찌’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었기에 아무런 부담감 없이 매 경기에 임할 수 있었고, 이것이 곧 4강 진출이라는 좋은 결과로 연결된 것 같다. 올림픽에서는 3승밖에 못했기 때문에 비결이라고 하기에는 부끄럽다. 다만, 선수들이 올림픽 무대라는 심리적 압박감을 이겨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그에 따른 결과물이다. 올림픽 무대의 중압감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무거웠다. 짧은 준비기간에서 오는 실력 차이도 있었지만, 부담감과 성적에 대한 욕심 등이 당초 목표인 4강에 오르지 못한 원인이다.
A. 충분히 가능하다. 대표팀은 올림픽 준비를 10개월 정도 했다. 그 중 외국 전지훈련은 불과 두 달여 정도다. 훈련 대부분을 태릉빙상장에서 소화했는데 태릉의 빙질은 외국과 전혀 다르다. 올림픽 경기장과 유사한 빙질을 갖춘 경기장에서의 훈련은 곧 팀 성적과 직결된다. 겨우 두 달간의 외국 훈련으로 빙질을 익힌 선수들이 만족스럽진 않지만 올림픽에서 3승을 거뒀다.
이번 소치 올림픽에서는 6승3패 정도면 4강 진입이 가능하다고 예상했는데 맞아떨어졌다. 실제로 대회가 치러지는 경기장과 비슷한 환경에서의 훈련이 국내에서도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다면 충분히 6승 이상의 기량 확보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국내 컬링 경기장의 확대 보급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전문 인력 확보도 필요하다.
경북 의성컬링장만 하더라도 가장 기초가 되는 아이스 설치는 캐나다의 전문 아이스메이커가 했다. 하지만, 유명한 아이스메이커들이 만들었다고 해도 그들이 계속 관리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컬링장의 빙질을 관리하는 전문 아이스메이커 육성이 병행돼야 한다.
Q. (감독께서는) 축구인 출신으로 알고 있다. 전혀 다른 분야인 컬링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A. 학교 교사로 활동하면서 축구 말고도 역도, 사격 등 다양한 종목을 담당했었다. 그러던 중 캐나다에서 우연히 컬링이라는 스포츠를 접하게 됐다. 이후로 캐나다에 사비를 들여가면서 드나들었던 것은 팀을 만들기 위해서도, 특별한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도 아니다.
단지 교사로서 컬링이라는 종목이 학생들에게 적합한 운동이라고 생각했다. 요즘 학생들의 일탈을 예방하기 위한 학교 스포츠클럽활동이 강조되고 있다. 집중력은 물론 팀원간의 단결력과 배려심 등을 기를 수 있는 컬링을 학교 스포츠에 접목한다면 인성교육 측면에서 너무 잘 맞아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Q. 사비를 들여 국외로 컬링 연수를 다녀오고 출장을 가면 가족들이 싫어하거나 반대도 많았을 텐데.
A. 돈 문제를 떠나서 어린 딸들을 여름에 바캉스 한번 데려간 적이 없는데 좋아했겠나(웃음). 지금도 항상 가족들에게 고맙고 미안하다. 컬링으로 받는 스트레스를 집에서 많이 표출했던 것 같다. 아내와는 ‘본업도 아닌 컬링을 도대체 왜 끌어안고 사느냐’며 갈등도 많았다. 수차례의 갈등 속에서도 묵묵히 내조를 해줬던 아내의 힘이 너무나도 컸다. 감독으로서 내게 의지하는 선수들을 위로하기 바빴다. 정작 내가 위안을 받을 곳은 없었기 때문에 외로움을 느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나에게 이번 올림픽에서 가족들의 응원 메시지는 큰 힘이 됐다.
Q. 세계선수권 4강 진출과 올림픽에서의 기대감으로 경기도청 팀에 CF 제의도 들어오고, 기업들의 관심과 지원도 늘고 있다는데.
A. 모든 게 윤택해진 것 만큼은 사실이다. 금메달을 따와도 이렇게까지 관심을 받기는 힘들다. 저조한 성적에도 불구 많은 관심을 받아 컬링 발전에 조금이나마 이바지했다는 것은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관심이 자칫 어린 선수들에게는 잘못 인식이 될 수도 있다. 누구든 매스컴이나 인터넷상에서 자신의 이름이 거론된다면 들뜨기 마련이다.
컬링은 팀 경기이기 때문에 팀워크를 항상 강조한다. 개인의 장ㆍ단점이 서로 융합된 게 팀인데 한명의 장점이 따로 부각되고 이슈화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지도자로서도 이 부분을 통제하지 못한다면 자격이 없다.
올림픽에 가기 전 몇몇 선수에 대한 대기업의 CF 제의도 있었지만, 그런 생각으로 거절했다. 물론 선수들과 충분히 대화를 나눴고, 흔쾌히 동의해 줘서 그 같은 결정을 내렸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선수들에게도 고맙게 생각한다. 현재도 각종 연예 프로그램에서 섭외가 많이 들어오고 있지만, 정중하게 거절하고 있다. 앞으로 나가야 할 길이 첩첩산중이다. 선수는 선수답게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는 게 맞다.
A. 본인의 의사를 존중할 생각이지만 그렇게 안일하게 생각할 팀원들은 아니다(웃음). 다른 종목에서도 흔히 볼 수 있듯 더 나은 제의에 혹해서 팀을 떠나는 경우가 많다. 굳이 팀을 떠나겠다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국가대표로 발탁되고, 올림픽 무대에 오를 수 있었던 원동력을 선수들 스스로가 잘 알고 있다.
대표팀은 훨씬 더 여건이 좋지만 다른 팀보다도 두 세배이상 힘든 육체적, 정신적 훈련을 소화해 내야한다. 감독 혼자 강하게 몰아붙인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선수들만 열심히 한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니다. 지도자와 선수간의 유대가 팀의 가장 큰 힘이고 원동력이라는 것을 팀원들도 인지하고 있다.
Q. 소치 동계올림픽을 마친 현시점에서 선수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항상 하는 말이지만 ‘초심을 잃지 마라’다. 감독인 내가 먼저 곱씹으면서 실천해야 할 말이기도 하다. 현재 분위기에 안주하지 말아야 한다. ‘호랑이 선생님’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선수들에게 엄하지만, 틀에 박힌 훈련을 강조하지는 않는다.
정해진 훈련보다는 개인적인 훈련을 통해 얻어지는 성과가 훨씬 더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공부와 마찬가지다. 학교공부만 한다고 해서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나머지 학습과 자기노력을 통해 더 크게 성장하는 것이다. 나머지 학습을 소홀히 하고 정해진 훈련에만 임한다는 것은 현상유지 밖에 안 된다. 팀의 성장은 팀원 개개인이 고루 발전해야 가능한 것이다.
Q. 마지막으로 많은 관심과 성원을 보내준 국민과 컬링 관계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과분한 사랑과 관심에 항상 감사하는 마음과 그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더 노력하겠다는 마음뿐이다. 그동안 주위의 많은 분들이 너무 애를 써주셔서 그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다. 이제는 컬링이 좁은 바닥에서 서로 서로 자신 또는 팀의 실리만을 위해 움직여서는 2018 평창 올림픽을 치러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
국내 컬링계가 대국적, 광범위한 의미에서 서로 협조하고 화합하는 게 중요하다. 컬링은 다른 종목과 달리 단일팀이다 보니 팀 간의 경계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그 매듭을 잘 풀어내는 게 숙제다. 가장 큰 틀이 하루빨리 마련돼 진심 어린 축하와 격려가 오가는 풍토가 정착됐으면 좋겠다.
대담=황선학 체육부장 2hwangpo@kyeonggi.com
정리=박준상기자 parkjs@kyeonggi.com
사진=추상철기자 scchoo@kyeonggi.com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