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늦둥이 아빠의 행복

최근 막내의 졸업 연주회에 갔었다. 대학교 졸업 연주회가 아니라 초등학교 졸업 연주회이다. 모든 일을 제쳐두고 국악관현악단의 일원으로 해금 연주를 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그 행복은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다. 다른 아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우리 아이의 모습만 커 보이는 것은 모든 부모의 마음이 같다는 것을 알면서도 너무 즐겁기만 했다.

연주를 위해 화장까지 한 예쁜 모습을 지인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사진을 얼른 카카오스토리에 올려놓고는 예쁘다는 답이 오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로 자꾸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쉰이 넘은 나이에 이런 행복을 과연 몇 명이나 누릴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나는 엄청난 행운아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마흔 한 살에 막내를 만났다. 계획하지 않았고 아내도 마흔이 넘은 나이여서 내심 당황스러웠지만 소중한 생명이니 귀하게 맞이해야 한다는 아내의 말에 걱정 반, 두려움 반으로 막내를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큰아이와 띠 동갑, 둘째와는 10살 차이로 태어난 막내는 우리 가족 모두에게 행복과 웃음을 가져다주었다. 늦둥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행복은 그 어떤 단어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크다. 모임으로 늦는다고 문자를 보내면 ‘쓩 달려오라’는 답장이 오고, 술 먹지 말라는 꼬리말까지 붙는다. 이런 문자를 볼 때면 입가에 웃음이 저절로 돈다.

퇴근하고 현관에 들어서면 대학생인 아들은 ‘오셨어요’ 하고는 이내 방으로 사라지지만, 막내는 힘껏 달려와 품에 꼭 안긴다.

집사람 키만큼 커버린 6학년짜리는 양 발로 내 발등을 밟고 내게 안긴 채로 가자고 하는 곳까지 춤을 추듯이 함께 가야 한다. 얼굴만 마주보면 ‘아빠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알지?’ 하면서 나를 압박한다. 역사퀴즈를 내달라는 것이다. 유난히 역사를 좋아하는 막내는 4학년 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5급을 취득했다. 문제를 내달라는 집요함에 귀찮기도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그저 즐겁기만 하다.

가끔은 아이 친구들이 할아버지라고 부르기도 하고, 초등학교 운동회에서는 학부모가 된 제자를 만나 겸연쩍은 웃음을 날릴지언정 ‘늦둥이 아빠’로 불리는 나의 행복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어떻게 알겠는가. 그래서인지 친구들을 만나면 늦둥이 덕분에 너무 행복해보이고 젊어 보인다는 속빈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물론 듣기 좋으라고 하는 이야기인줄 알면서도 늦둥이 덕분에 마음과 육체 모두가 젊어진다는 느낌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사회에서 베푸는 혜택이나 보상은 피부에 와 닿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지만 억만금을 주어도 얻지 못할 행복이다.

우장문 동아시아전통문화연구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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