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막역지우(莫逆之友)와 함께 먹는 음식

최근 ‘막걸리’가 인기를 끌고 있다. 막걸리는 우리나라 전통 술로 농민들이 즐겨 마셔 농주 혹은 탁주라고도 불린다. 일손이 필요한 모내기철이 되면 막걸 리가 식사 때는 물론이고 새참시간 마다 등장하는 단골 메뉴이었다.

일꾼들은 막걸리를 한 사발 씩 들이키면 배도 부르고 술기운도 올라서 힘든 줄도 모르고 흥겹게 콧노래를 부르면서 일을 하곤 했다.

아이들도 모심부름을 하고 이리 저리 불려 다니면 힘들고 하기 싫어서 농땡이를 부리고 있을 때면 막걸리를 걸러낸 술지게미에다가 물을 부어 헹군 다음 뉴슈가를 타서 한 사발씩 주면 벌떡 마시고 얼굴이 벌게져 논바닥에 넘어지고 자빠지면서도 기분이 좋고 신바람이 나서 해가 지도록 논에서 모심부름을 하곤 했던 기억이 있다.

나이 40이 되면 어린 시절 입맛에 길들인 음식을 찾는다고 했던가. 요즘 내가 즐겨 찾고 즐겨 먹는 음식 가운데는 막국수, 막김치, 막전들이라는 것들이 되었다. 대체로 값도 싸고 맛도 좋다. 그러나 단순히 그러한 이유만은 아니다. 함께 먹을 수 있는 사람들 때문이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사역은 관계목회이다. 사람을 자주 만나고 상담을 하고 함께 식사를 하는 편이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 중에는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도 있고 내가 필요로 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이러한 만남의 시간을 주로 새벽이나 낮 시간을 이용해서 약속하고 만난다. 저녁 시간은 나에게도, 그에게도 가족들과 보내는 소중한 시간이 되기 위해서이다. 만나는 사람들 가운데는 편하게 만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조금 부담이 되는 이들도 있다.

아침 일찍 만나는 사람과는 주로 우거지 국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낮에 만나는 사람들과는 주로 막국수를 점심식사에 한다. 우거지 국과 막국수를 함께 먹는 사람들은 대부분 편한 사람들이다. 아니 편한 정도가 아니라 막역지교들이다. 그냥 막연한 사람이 아닌 막역한 친구들, 언제 어디서고 편하게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나는 나름대로 우거지국의 의미를 붙인다. 내가 생각하는 우거지는 ‘友巨志’(우거지)이다. 한마디로 큰 뜻을 품은 벗들과 함께 먹는 국이라는 의미이고 막국수는 莫국수 이다. 막역지우와 함께 먹는 국수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나는 ‘莫’(막)국수가 좋고 ‘友巨志’국이 좋다. 그리고 그것을 함께 먹을 수 있는 막역지우들이 있어서 좋다.

아니 나를 막역지우로 대해주는 막역지우가 참으로 좋다. 곱빼기 그릇에다 가득 담아주는 막국수 집 주방 아주머니, 씩 웃으며 가득담긴 우거지국 그릇을 내미는 주인양반의 얼굴에서는 인정이 물씬 풍긴다.

이관호 수원기독교총연합회 사무총장ㆍ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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