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분이 말씀하시더라고요. 대학 때 구석기 유적 발굴장에서 교수님보다 먼저 발굴장에 나가기 내기를 했는데 항상 가보면 교수님이 그 자리에 계셨다고요. 발굴장에서는 엄하시고, 발굴이 끝나면 밤늦게까지 그 날의 발굴에 대하여 토론을 하시면서, 녹음까지 하시던 모습이 30년이 지난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때마다 툭툭 던지시던 질문은 우리를 당황하게도 했지만, 제자들을 열심히 공부하게 만들었습니다.
교수님 연구실에서 일하던 대학 시절 저는 11시 이후에나 학교에서 나올 수가 있었습니다. 다른 연구실의 불이 모두 꺼져 있는 것을 보시면서 ‘우리나라 교수들이 열심히 연구하지 않는 것 같다’고 혼잣말로 말씀하셨지요. 그런 교수님은 일요일에도 항상 연구실에서 사셨지요.
사모님께 눈물겹도록 은혜를 입었던 것도 잘 아시지요? 배고픈 사범대 시절에는 라면과 밥 그리고 반찬까지 자취하는 우리들에게 손수 챙겨주셨습니다. 그리고 결핵성늑막염으로 힘들어 했을 때는 약국을 하시던 사모님께서는 치료약을 거의 무료로 주셨습니다.
보험이 없던 그 시절에는 내가 먹던 약값이 매우 비쌌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가난했던 저에게는 너무나 큰 도움이 되었으나 아직까지 일 년에 두 번씩 찾아뵙는 것 외에는 변변한 답례도 못했습니다. 그 은혜는 영원히 잊지 않을 것입니다.
어저께는 얼마 전 수상하신 외솔상에 이어 연문학상을 수상하시는 교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380여 편의 논문을 쓰신 세계적인 구석기 시대 학자께 드리는 당연한 수상의 자리이지만 축하를 위해서 참석한 저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열심히 사시고, 베푸신 교수님 내외분 같은 분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이 크게 발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교수님, 사모님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앞으로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우장문 동아시아전통문화연구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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