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사물을 가까이 보지 말고 멀리 보면서 눈의 피로를 풀어 주어야 한다고 했다. 진찰 후에는 동공을 키우는 약을 넣어 운전을 할 수 없어서 회복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가급적 멀리 보려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종합병원이라 안과에도 환자가 얼마나 많던지. 오신 분들 보면 이만 저만한 사연과 아픔을 지닌 분들 같았다.
그 많은 분들 중 특별히 두 분의 환자를 보면서 느낀바가 있었다. 한 분은 호칭하는 모습에서 며느리가 모시고 온 시어머니였다. 그냥 아주 수수한 옷차림의 며느리, 칭얼대는 아기를 가슴에 띠를 띠어 안아 달래고 있었다.
또 한분의 환자를 보았다. 아마도 대화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딸과 친정어머니 사이였다. 두 분 다 차림새도 있어 보이고 여유로워 보였다. 다만 어머니가 연세가 좀 들어 보였다.
그런데 어머니를 향한 딸의 언행은 영 아니었다. 가령 “올케는 뭐한대? 오빠는 내가 그렇게 한가한 줄 알아?” 그러면서 이 진료실 저 진료실 끌려 다니다시피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멀리 바라보다던 의사 선생님 말씀도 잊은 채 안압이 올라가 피곤이 더해 졌다.
멀리 바라보고 눈의 피곤을 풀고 싶은데 가까이에 이런 저런 모습이 가로막고 있었다. “이럴 땐 그냥 눈을 감지요”의 시구가 생각나서 눈을 감고 깊은 상념에 잠겼다.
공경하는 삶이 아름다운 이유는 하나님의 계명에 순복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공경하는 삶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것이 인간의 죄 성을 이기는 삶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성은 죄요 죄는 불순종의 영아래 있지만, 순종하고 공경하는 삶은 죄를 이긴 자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공경하는 삶-이것은 사람을 가장 아름답고 능력 있게 만드는 방편이다.
이관호 목사ㆍ수원기독교총연합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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