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의 수원 행차는 8권에 달하는 ‘원행을묘정리의궤’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이에 의하면 8일간의 행사 수행원이 6천여명, 말이 1천400필로 행차의 총 길이가 2㎞가 넘었을 뿐 아니라 예산도 10만냥으로 현재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70억원이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정조의 수원행차는 단지 화려하기만 한 행사가 아니었다. 당시 왕실의 모든 행사는 일반 백성들이 전혀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별천지에서 벌어지는 ‘그들만의 잔치’였다면 수원행차는 전 국민이 보고 참여할 수 있는 국민적 축제의 장이었다. 또한, 정조는 수원 행차를 전국에 소문을 냈는데 이 소식을 들은 백성들이 왕의 행차 길목에서 기다리다 직접 억울한 일을 하소연했으며 그 자리에서 문제와 관련된 관리들을 불러서 그 일을 해결하도록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수원에 도착한 정조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아버지 사도제자의 생일에 맞춰 연 것을 비롯해 행차 기간 중 불랑기포, 쇠뇌, 신기전 등 신무기의 화력을 시험하는 대규모 군사훈련을 벌이기도 했다. 이는 반대파 신하들의 위협에 시달리던 정조가 무력시위로 이들에게 경고를 해 당시의 복잡한 정치적 상황을 변화시켜 보려는 의도가 들어 있었다.
특히, 정조는 이 행사를 준비하면서 ‘백성으로부터 단 한 푼의 돈도 걷지 말라’고 명하고 왕실의 비용으로 이를 진행했으며, 각종 비용을 절감해 10만냥의 예산 중 6만냥으로 행차를 치를 수 있었으며, 남은 4만냥은 어려운 백성들을 위한 구제비용으로 대부분을 사용했다.
오늘, 이 시간에도 전국각지에서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크고 작은 수많은 전시성 행사들이 펼쳐지고 있다. 겉치레와 화려함에 취한 오늘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200년 전 정조대왕의 수원 행차에 담겨있는 백성 사랑의 그 따뜻한 마음, 진정한 나눔이 새삼 그리워진다.
전흥윤 인천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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