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고령화 사회에 관한 단상

‘유병장수시대’. 한 생명보험 회사의 TV광고 문구다. 노년의 걱정 중 하나인 건강을 강조한 광고이다. 휠체어에 탄 노년의 여배우가 주인공인데, 휠체어를 미는 젊은 아들에게 손자가 결혼하는 모습까지 살아야겠다고 말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장수는 인간의 원초적 욕구이다. 동양에서 인생의 바람직한 조건으로 들고 있는 오복(五福) 중 으뜸 또한 장수다. 하지만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장수가 행복의 조건이기만 할까?

경제성장과 의학기술의 발달로 한국 남자의 기대수명이 1970년에 58.67세이던 것이 2020년에는 79.31세로 연장된다고 한다. 50년 사이에 21세의 평균수명이 늘어난 셈이다.

장수하는 인구가 늘어났으니 개인의 행복이 증가하고, 따라서 사회구성원의 행복의 총합도 늘어나지 않았을까? 경제성장과 더불어 한국의 소득수준이 높아진 걸 감안하면 더욱 그렇지 않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유감스럽게도 아니다.

OECD의 2013년 발표에 따르면 한국노인의 상대빈곤률은 45.6%로 OECD 국가 중 1위라고 한다. OECD 내 다른 국가들과 달리 유독 한국만이 노인세대로 갈수록 소득수준이 급격히 악화된다고 한다.왜 그럴까? 1997년 말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라는 두 차례의 경제위기를 맞이하면서 청년실업의 급증과 50세 전후로 한 조기퇴직으로 한국인의 평균적인 생애과정이 바뀌었다.

2009년 한국의 평균 정년 53세임을 고려할 때 2020년 한국 남자는 은퇴 후 31년 정도를 소득이 없이 보내게 된다. 장수가 사회 전체적 차원에서는 불행을 부르는 사회구조적 위험요소가 된 것이다. 이른바 ‘장수시대의 딜레마’이다.

올해 10월에도 어김없이 노인에 관한 기사가 신문지면을 채운다. 10월이 ‘경로의 달’이고, 10월2일이 ‘노인의 날’이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불행하게도 ‘고령화 사회’의 열병을 앓고 있는 한국의 현 주소를 전하는 기사와 뉴스가 쏟아진다.

‘OECD 중 노인의 상대빈곤률 1위’, ‘노인성 치매’ 환자의 급증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가중 등의 소식이 노인문제를 중심으로 한 가족 및 사회공동체의 해체에 관한 경고를 알린다. 지금은 기본권보장을 통한 국민통합이라는 헌법정신을 가슴에 단단히 새기고 사회안전망을 튼튼하게 구축함으로써 고령화 사회라는 법치주의에 대한 새로운 도전을 슬기롭게 극복하는데 다 같이 힘을 모아야 할 때다.

오도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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