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화성의 정문, 장안문

화성에서 열린 생태교통축제를 보고 있노라면 과연 장안문이 화성의 정문이었음을 실감할 수 있다. 장안문을 오가는 수많은 시민들의 모습에서, 1795년 혜경궁 홍씨 회갑연 당시 2천여 명이 대열을 지어 장안문을 통과해 화성에 입성했던 광경이 떠오른다.

화성의 정문이었던 장안문은 한국전쟁 때 유엔군의 폭격으로 소실되었으며 79년에 복원되었다. 95년까지만 해도 화성은 그저 복원해야 할 문화재로만 여겨졌다. 그러나 심재덕 전시장의 견해는 달랐다.

집이든 문화재든 실제로 활용해야 관리도 되고 수명도 연장된다는 것이다. 문화재를 구경만 할 것이 아니라 실생활에 활용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심 전시장의 견해에 따라, 섬처럼 동떨어져 있어 접근할 수 없던 장안문 양편에 다리를 놓는 계획이 추진되었다. 당초 화성과 어울리는 목재와 석재로 육교를 계획했지만, 문화재 전문가들은 오히려 어설픈 복원을 경계했다. 

결국 원형과 차별화된 철제 다리를 연결하였지만 장안문과는 어울리지 않을 뿐 더러 화성을 훼손했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문화재청에서도 장안문과 어울리는 소재로 재공사를 시행하라는 의견을 줬다.

현장여건을 검토하던 중 “이참에 장안문을 완전히 복원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안문의 복원을 위해서 100여 년간 사용해온 통과차량을 해결해야 했다. 장안문 주변의 도로망을 검토한 결과, 동쪽 통로만으로도 4차선을 확보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2005년 12월 26일 장안문 성곽잇기 공사를 착공하였고, 2006년 7월 10일 새벽 6시부터 로터리 방식을 사거리체계로 전환했다.

우려 반 긍정 반의 심정으로 교통상황을 지켜보았는데, 사전에 충분히 차량 우회에 대한 협조를 요청하였음에도 첫날의 상황은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사업의 추진을 후회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백방의 노력을 하였고,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조금씩 나아져서 일주일이 지나자 극심한 체증을 모면하였고 한 달이 지나면서 정체 현상도 풀리게 됐다.

김충영 수원시청소년육성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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