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법률 질적개선 위한 입법평가 시급

조령모개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중국의 전한시대, 흉노가 자주 변방을 침략해 약탈을 자행하던 시절이었다. 백성들은 춘하추동 쉴 틈 없이 농사일에 매진하다가, 갑작스럽게 흉노를 막기 위해 불려가거나 혹은 세금을 부과 당했다. 백성들의 삶은 나날이 피폐해졌다. 그 당시 어사대부였던 조착이 그들의 고통을 덜어달라는 상소를 올리면서, 아침에 내린 명령을 저녁에 바꿔서는 안 된다고 호소한 데서 유래한다. ‘법령에 일관성이 없이 갈팡질팡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입법절차는 법률안 제출주체에 따라 크게 의원입법과 정부입법으로 구분된다. 그런데 최근 들어와 급증하고 있는 의원입법의 경우, 정부입법에 비해 부실 또는 졸속으로 법안이 발의될 가능성이 높다. 의원들이 충분한 검증을 거치거나 다른 법률과의 관계를 유기적으로 확인해 발의를 하기 보다는 당시 상황별 여론입법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여론을 의식해서 혹은 표를 얻기 위해 선심성 입법을 하는 경우 아무래도 조금 무리하게 되고 시간에 쫓겨 제대로 된 입법을 하기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다. 제18대 국회(2008~2012)에서 의원 발의된 법률안은 1만2천220건, 그 중 1천663건(14%)이 가결됐으나, 같은 기간 동안 정부제출 법률안은 1천693건, 그 중 690건(41%)이 가결됐다. ‘부실법안’, ‘졸속법안’ 내지 ‘중복법안’이라는 비판이 무게감을 얻는 이유다. 또한, 의안 발의돼 가까스로 본회의를 통과해 시행되더라도 국민의 법적 안정성을 해치거나 다른 법률과의 부조화나 불합치로 인해 수시로 개정되는 바람에 문제가 심각해지기도 한다.

의원입법은 국민의 대표자인 국회가 국민의 의사를 입법으로 대변한다는 상징성이 매우 크다. 정부입법에 비해 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하거나 소외계층을 지원하는 긍정적 역할을 하고, 중요한 입법과제를 주도하는 등 장점도 뚜렷하다. 과거 민주화 시대를 거쳐 입법의 주도권이 정부에서 국회로 넘어온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법안의 질(quality)’을 관리할 시점이다. 미국과 유럽 등 법률 선진국에서는 법령의 질적 개선을 위해 여러 제도적인 노력을 계속해오고 있는데, 특히 프랑스는 법안 통과 전 예방적 규범통제에 치중한다고 한다.

최근 대한변호사협회는 ‘제22회 변호사대회’를 통해 국민과 법치주의 수호를 위해 입법 바로 세우기를 실현해야 한다고 선언했고, 여러분야 전문가를 초빙해 의원들이 발의한 입법평가위원회를 설치하는 한편, 그들의 입법 활동 평가를 담은 백서를 발간할 계획이다. ‘조령모개’식 입법의 질적 개선을 기대해본다.

/위철환 대한변호사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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