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이석기의 내란음모 혐의와 한국 현대사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이 이끄는 그룹이 내란음모 혐의를 받고 있다. 올해 봄 북한이 한창 전쟁분위기를 고조시키던 때, 이석기 그룹은 전쟁 발발 시에 비정규전을 수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토의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확인된 사실은, 이 모임이 실제 있었고 통진당은 그것이 경기도당의 모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공개된 녹취록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반박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녹취록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현직 국회의원이 이끄는 혁명조직(RO)이 내란음모를 한 것이 명백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석기 의원의 발언과 분반토의 내용이 너무나 비현실적이라, 정신병자의 망상이거나 병정놀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석기 그룹의 회합 내용이 망상에 불과하다는 주장은 본인이 부정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강연 취지는 전쟁을 ‘60년간의 정전체제를 끝내고 항구적 평화를 실현할 수 있는 기회로 바꾸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석기 의원이 주장하는 ‘항구적 평화’가 ‘북한의 승리에 의한 대한민국 체제의 붕괴’를 의미한다는 점이다. 한 마디로 박헌영의 ‘남로당원의 봉기’라는 꿈을 이번에는 반드시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바로 이점이 내란음모 혐의의 핵심이다. 물론 이 혐의에 대한 사법적 판단은 재판정에서 공정하게 가려져야 한다.

녹취록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석기 그룹은 대한민국의 정당성을 부정하고 있다. 실제로 NL그룹(주사파)은 대한민국의 건국은 미제국주의자와 친일파에 의한 것이고, 6ㆍ25 동란은 미제국주의자가 일으킨 것이며, 북한의 경제적 어려움은 미제국주의자의 전쟁위협에 자주적으로 대항하는 과정에서 생긴 것이라고 믿는다.

한국 현대사에 대한 부정은 김일성의 주체사상만이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을 반(半)의 건국으로 보고, 한국의 정체가 자유민주주의임을 부정하는 역사학자들은 흔하다. 이들에게 자유민주주의란 사회민주주의, 인민(민중)민주주의 등 수많은 민주주의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이석기 그룹이 전쟁 발발 시에 한반도의 반을 무너뜨리는 비정규전을 ‘항구적 평화실현’이라고 주장할 수 있었던 토대는,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진 한국 현대사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자유민주주의의 보편성에 대한 몰이해라고 할 수 있다.

홍성기 아주대 기초교육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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