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전력대란이 문제가 아니다

새벽녘 어디서 불어오는 서늘한 기운에 밤새 밀어놓았던 이부자락을 끌어당기게 한다. 계절이 가을의 문턱에 와 있는 것이다. 막 지나고 있는 올 여름 혹서의 위력은 유래 없이 강했다. 그럼에도 턱없이 부족한 예비전력 탓으로 그 더위는 우리 모두를 여느 여름보다 더욱 견디기 힘들게 만들었다.

예전 같으면 무더위가 심한 시간에 공공기관에 들어가 한순간 무더위를 피해 가기도 했으나, 올 여름은 그런 행운을 얻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얼굴이 발갛게 상기돼 대민 봉사하는 공직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새삼 공무원들의 충실한 근무 자세를 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올 여름 국민 모두가 겪었던 이 엄청난 고통이 어디에서 온 것인가? 전력수요 예측 실패와 발전소 건설지연도 원인의 일부가 될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불량부품 사용에 따른 원전의 잦은 고장과 그로 인한 가동중단 때문이다. 원전과 관련한 비리와 불량 관리의 결과물이 국민들에게 주는 피해는 전력대란이 문제가 아니다.

그 피해는 국민의 생존 문제와 직결되며 다음 세대로도 연결될 수 있다. 정확한 피해 상황을 알 수도 없지만 몇 년째, 한 달이 멀다하고 보도되고 있는 이웃나라 일본 후쿠시마현의 원전 사고는 결코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지 않는가. 우리는 세월이 많이 지났음에도 1979년 미국 펜실베니아주의 스리마일섬 원전사고, 1986년 우크라이나 공화국의 체르노빌 원전 폭발사고를 기억한다.

사고가 발생된 체르노빌 지역엔 아직도 기형의 동물과 사람이 태어나고 있다하니 그 재앙을 어찌 다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참으로 유감스러운 것은 이들 두 원전사고를 비롯해 후쿠시마현 원전사고가 인재 및 천재로 발생했지만 그 어느 것도 불량부품을 사용하는 원전의 부실관리로 발생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하지만 최근의 한수원 원전비리 사건으로 나타난 원전의 가동중단은 의도적인 불량 부품의 사용으로 발생된 것이 명백하다.

금전 로비가 게재돼 의도적으로 불량부품을 사용하는 우리의 원전은 체르노빌 원전사고나 스리마일 원전사고 보다 도덕적 측면에서는 사고의 발생가능성이 결코 낮지 않다. 원전은 우리에게 외면할 수 없는 에너지이지만 양날의 칼과 같다. 한번쯤이라는 생각으로 불량부품을 사용하는 시행착오 방식의 원전 관리는 결코 아니 된다. 한 번의 시행착오는 곧바로 국민의 고통으로 연결된다. 그 고통에 자신의 혈육도 예외가 아님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철태 (사)한국지식재산교육연구학회장 단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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