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화성행궁 복원의 의미

화성행궁은 화성의 핵이며 수원의 중심이다. 정조대왕은 1801년에 간행된 화성성역의궤의의 화성기적비문을 통해서 화성은 원침(융능)과 화성행궁을 보호하기 위해서 축조했다고 밝힌다.

정조는 세자가 15세가 되고 혜경궁 홍씨가 칠순이 되는 1804년 왕위를 물려주고 어머니를 모시고 화성행궁에 와서 살고자 하는 공간이었다. 즉, 화성행궁은 정조 자신의 공간임을 표현한 대목이다.

화성행궁은 국력의 쇠락으로 이어진 일제강점기를 맞으면서 봉수당은 자혜의원이 들어서고, 북군영은 경찰서, 남군영은 토목 관구로 쓰였고, 우화관인 객사는 수원공립 소학교로 쓰였다. 낙남헌은 수원군청으로 쓰이다가 신풍 학교 교무실로 사용돼 남게 되었다.

이처럼 화성행궁은 정조대왕이 머무를 중요한 공간으로 건설됐는데 나라의 쇠락으로 지키지 못하고 헐리고 말았다. 1989년 행궁자리에 있던 경기도립병원이 시설 노후화를 극복하기 위해서 현대식 건물로 신축하는 방안이 추진됐다.

지역의 문화를 주도하던 김동휘 박사(등잔박물관장)와 이종학 서지학자(독도박물관장), 안익승 유네스코회장, 이승언 향토사학자와 심재덕 문화원장 등은 도립병원을 신축하면 화성행궁 복원은 영원히 불가능하므로 도립병원 신축 반대 운동을 벌인 끝에 당시 임사빈 도지사로부터 철회 약속을 받고 이어 행궁복원 추진위원회를 결성해 시민운동으로 추진하게 된다.

당시 도립병원 신축반대운동을 추진했던 심재덕 문화원장이 1994년 수원시장으로 당선되면서 화성행궁 복원은 급진전됐다. 이를 계기로 화성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을 추진했다.

화성행궁 자리에 도립병원이 현대식으로 지어졌다면 하는 가정을 해본다. 역사는 가정이 없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수원과 화성은 참으로 암담했을 것이다. 한마디로 화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6천50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예산을 들여 화성을 복원정비할 명분도 동력도 없었을 것이다.

수원시가 9월에 진행하는 ‘생태교통 수원 2013’ 사업도 화석연료 고갈 시대를 대비하는 사업이라지만 결론은 화성을 빛내기 위한 사업이라 할 것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행궁복원으로 인한 결과의 소산이라고 생각된다.

화성행궁 복원사업은 2002년 7월 576칸 중 482칸을 복원해 1단계 복원 행사를 했다. 아직 복원되지 못한 94칸에 대해서도 계획대로 잘 마무리를 지어야 할 것이다. 화성의 활성화에 대해서도 ‘생태교통 수원 2013’ 사업이 기폭제가 될 것이다. 행궁동 주민과 수원시민이 단합해 화성을 가꾸고 알리는 일에 온 힘을 다한다면 세계적인 역사문화 관광지가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김충영 수원시청소년육성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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