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세 없는 복지는 국민기만적 레토릭… 고소득층 분담 높여야”
특히 상대적 박탈감이 극에 달한 월급쟁이들의 불만이 폭주, 지난 13일에는 정부가 수정안을 내놓기까지 했다.
재정학자인 이재은 경기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를 만나 이번 세법개정안을 둘러싼 논쟁에 대해 짚어봤다.
이 교수는 “증세라는 용어의 함정에 빠지면서 정부가 선택의 제약을 받고 있다”며 “국민들에게 공약으로 제시한 복지를 실현하려면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는 것을 솔직하게 알리고 고소득층의 부담을 높이는 것이 수반돼야 함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열흘, 증세논란으로 대한민국이 뜨거웠다.
-기본적으로 예산안에 따라 필요한 재원을 어디서 조달할 것인지 계획을 담아 내는 것이 세재개편안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8일 발표한 개정안은 박근혜 정부의 첫번째 개편안으로, 선거 공약을 어떻게 실현하기 위한 재원 조달 계획을 보여주는 첫번째 안이라 점에서 특히 중요한 것이었다.
우선 조달하려는 재원 자체가 충분치 않아 보인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소위 유리지갑이라는 근로자 중심으로 세원확보노력을 기울이고, 나머지 부분에서의 증세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자체 내용의 부실함이 있음에도 재정당국이 국민에 대한 설명을 하는 대응방식에서 많은 실수를 했다. 3천~4천만원 봉급자들이 연간 16만원 더 내는 것이 문제가 안 된다는 안일한 생각으로 접근한 것이 국민들을 ‘열받게’ 만든 첫번째였다.
설명하는 과정에서도 언론에서 자료를 분석해 기사를 내면 이를 반박해 논란을 증폭시키는 등 진솔하게 다가가지 않았던 점이 소위 국민 근로자를 열받게 만든 첫번째였다.
논란을 정리해보자면 박 정부의 공약 실천하는데 부실한 것이 출발점으로, 증세를 논의하는데 증세라는 단어를 쓰지 않으면서 국민을 현혹시키면서 누군가 덜 내는 대신 누군가 더 내면 그것 또한 증세인데 세율 올리는 것만 증세라는 국어사전에도 없는 어법 구사해 국민의 공분을 일으켰다. 또 근로자들 중심으로 세수확보노력하면서 불로소득을 세원으로 포함시키려는 노력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논란을 대응하는 방식이 진솔하지 않고 국민들을 화나게 만들면서 ‘거위털 고통을 느끼지 않는 정도로 뽑는다’는 봉건시대 논리를 구사해 시대착오적인 발상임을 스스로 보였다고 할 수 있다.
-증세의 대상을 정하는 것은 택일할 사항이 아니다. 개인도 증세하고 법인도 해야하는데 이분법적으로 이야기하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개인 중에도 고소득층과 불로소득층, 양도차액이나 증여소득 상속소득 등에 대한 부분은 물론,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고액자영업자도 증세해야 한다.
현행 최고세율인 38%는 국제적으로 높은 세율은 아니다. 김영삼 정부 시절 50% 이던 최고세율이 IMF 당시인 1997년 김대중 정부에서 40%로 깎으면서 역대 정부들이 대부분 최고세율을 지속적으로 낮춰왔다. 위기 이후 고소득층을 배려했다고 가정했을 때, 그들이 투자해 살아난 분야가 없으므로 당시 수준으로 올려도 크게 억울할 것은 없다.
더구나 소득 양극화가 극심해지고 기업 등이 적자를 내고 있는 상황에서도 경영자인 CEO 한사람이 수백명 근로자보다 많은 돈을 받고 있는 것은 사회통합 관점에서 용납이 안 되는 것이다.
복지를 위해 조금 더 걷는 것이므로 고소득층 증세노력 수반돼야 한다. 특히 지금처럼 극심한 양극화 상황에서는 세원은 거기 뿐이고, 현 정부는 보수세력이니 동의를 받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또 당연히 법인과세에도 손을 대야 한다.
이명박 정부의 감세정책만이라도 원상회복 시키면 더 걷지 않고 5년전 수준으로만 가면 된다. 우리나라 법인세율은 지난 1981년도 53%였다가 지속적으로 낮아져 IMF 직전 30.8%, 노무현 정부 시절 29.7~27.5%에 현재 22%까지 낮아졌다. 국제적으로도 OECD 평균보다 약간 높은 수준이긴 하지만 OECD 평균이 낮은 것은 동부권 체코 헝가리 슬로바키아 등이 낮기 때문이다.
또 실효세율은 낮지만 GDP 대비 법인세 비중이 OECD 평균 보다 높다는 주장은 오히려 법인 소득이 높다는 의미로, 엄청난 유휴자금이 쉬고 있다는 것이다. 세율을 낮췄는데도 법인세 비율이 높아지는 것은 원래 법인소득이 높다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인데 세금을 법인에게 걷지 않고 개인에게만 걷겠다는 것은 정책적 어불성설이다.
▲증세 없는 복지에 대한 논란이 거세다. 가능한 말인가.
-사실 증세라는 용어 자체가 잘못 선택된 것이다. 정부는 세율인상을 통한 것만이 증세라고 보고 비과세감면 줄이고 탈루소득 찾아내고 지하경제 양성화하고 세출 조정해 재원 확보한다는 주장인데, 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 정도의 세수증대를 통해 135조원이 필요한 복지공약을 실현하나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최근 새누리당 정부가 의원총회에서 공약 재조정에 대한 언급을 했다는 것은 이런 비판에 대해 심리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정치적 부담으로 인해 드러내기 힘든 상황이라는 것을 반증한다. 흔히 복지수준을 ‘고복지 고부담’, ‘중복지 중부담’, ‘저복지 저부담’ 등으로 나누는데, 박근혜 정부는 저복지 저부담 정책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낮은 수준의 복지만 하겠다는 것을 증세 없는 복지라는 국민기만적 레토릭으로 표현했다고 본다.
복지는 크게 두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모든 국민들이 인간답게 살 권리 생활의 안전 보장은 재정지출 형태의 사회보험 방식으로 구현되며, 일부 저출산ㆍ고령화 문제 대응에 소득재분배형 복지가 도입되고 있다. 결국 ‘못사는 사람들끼리 모아 못사는 사람끼리 나눠라’가 복지의 근간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계에 이른 중산층 불만이 고조될 수밖에 없다.
조세는 격차축소라는 복지의 핵심으로, 우리나라는 지속적으로 소득재분배 기능이 낮아졌음을 감안할 때 결국 저소득자들이 세금 더 부담할 각오는 돼 있지만 고소득자도 그에 상응하는 추가부담을 해야 한다는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여기에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들에 대한 사회안전망이라는 측면에서 대기업들의 활동을 통해 탈락한 사람들에 대한 것은 승리자가 부담해야 한다는 측면도 논의돼야 자유로운 시장경제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소득재분배 문제로 귀결되는 것 같은데.
-양극화 심화의 출발은 IMF 때 기업에 정규직 근로자 해고의 자유를 부여하면서 비정규직이 절반 가까이 늘어나면서부터다.
청년실업이 늘어 젊은이들 희망이 없다지만 새로운 도전의식 줄어들면서 미래에 대한 강한 도전을 하지 않는다. 실패하더라도 받아 줄 안전망이 없어 공무원시험에 매달리고, 결혼도 안 하고, 저출산 문제도 파생된다. 생활의 어려움, 내 집 마련, 아이 양육 등으로 생활을 즐기기 어렵다는 측면에서 미래 노동력 사라지고 있는데, 정책적 기반 마련하는데 가진자들이 복지알레르기를 보이는 것은 지극히 천민자본주의의 파생물 같은 것이다.
경쟁이 심하면 부작용이 발생하듯 복지가 강화되면 부작용이 있을 수 있지만 젊은이들이 확실한 안전망을 믿고 마음 놓고 도전하고 새로운 것을 찾는 구조를 만들어야 내수시장이 튼튼해진다.
결국 선진국형보다 케인즈형에 가까운 정책으로 소비수요를 늘려 선순환을 통한 경제활성화를 꾀해야 할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세제개편과 연관지어 생각하면, 국가재정과 아울러 지방이 지방비 부담으로 같은 사업을 하는데 대한 고민이 전혀 없었다는 점이 문제다. 취득세 항구감세 같은 논제를 기재부가 선도하면서 대안은 앞으로 고민해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는 문제를 일으키면서 대안을 고민하지 않고 있다는 정부의 얕은 의식을 드러낸다.
정부가 복지 공약을 많이 내놓고 대부분을 지자체가 실시하고 재원부담을 나누면서 많은 지자체가 재정긴장 또는 위기상태를 겪고 있는 중이다. 이런데도 지방소득세나 지방소비세 세율인상에 대해서는 소극적이거나 부정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데, 지금과 같은 세재개편안으로 복지정책 실시되면 엎으로는 더 어려워질 것이 뻔하다.
지방정부의 재정이 어려워진 이유는 재정운용을 잘못했다기보다 감세정책으로 인해 어려워진 것임을 감안해야 한다. 90조원에 달하는 소득세와 법인세룰 감세한 것의 절반은 지방에 왔어야 하는 돈이었다.
노인수당, 영유아 보육료, 무상급식 등 복지정책을 만들 의무강제하고선 이에 따라 발생하는 재원대책은 마련하지 않아 재정위기를 불러왔다. 박근혜 정부도 취득세 감세하면서 각종 복지 증진하면 동일한 형태의 갈등 일으킬 소지가 다분하다.
▲이번 감세논란, 대안을 제시하신다면.
정부가 보수의 정책 콤플렉스 또는 언어의 함정에서 벗어날 필요 있다. 증세나 감세는 금과옥조가 아니다. 경제여건이 바뀌면 필요할 때마다 증세 혹은 감세가 이뤄져야 하는데, ‘증세는 좌파의 논리, 감세는 우파의 논리’라는 식의 잘못된 정책 콤플렉스가 현 집권세력의 정책결정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증세에 대한 부담이 크다면 미국의 부시감세가 지난해 일몰된 것 처럼 일몰제를 도입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또 1990년대 초 스웨덴이 위기를 맞았을 때 복지지출 소득보장을 줄이고 대신 고통을 분담해 고소득층 소득세율 높여 재정적자를 없앤 뒤 흑자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이를 IT, 환경, 교육에 투자해 경제 위기 극복 및 발전의 근간으로 삼았던 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한국 경제의 희망으로 살려야 한다.
탈루세원 늘리고 지하경제 양성화 및 세출 구조조정 등 당연한 일들을 하고 재원확보가 안될 때 솔직하게 국민들에게 알려서 증세의 공감을 얻어내고, 고소득층의 부담도 수반돼야 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
이지현기자 jh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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