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번개탄에 대한 단상

공직에 들어와 초임근무를 지방에서 시작하게 되었었다. 집을 떠날 때 혼자 자취생활을해야 할 자식이 안쓰럽고 불안했던지 어머니는 객지에서의 몸조심을 누누이 당부하면서 특히 겨울철 연탄가스가 위험하니 방문의 창호지를 한쪽은 반드시 찢어 두어서 공기가 통할 수 있도록 하라는 말씀도 몇 번이나 강조하였다.

자취방을 얻어 생활하면서 어머니의 말씀을 잊지 않고 겨울철에는 방문의 창호지 밑둥을 면도칼로 찢은 뒤 곱게 접어 개방함으로써 가스 중독의 예방책은 완벽히 수행하였으되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자취방의 연탄불은 퇴근시간이 일정치 못함에 따라 갈아 줄 여가가 없어 불씨가 사그라져 있기 다반사였다.

그러나 번개탄이라는 유용한 불쏘시개가 있어 연탄불을 지피고 겨울의 추위를 이겨내는데 큰 어려움을 격지는 않았었다. 검고 육중한 두께의 연탄에 손쉽게 열기를 전파하고 이윽고 생명력을 불어넣는 번개탄의 그 강한 연소와 푸른 불빛을 지켜보노라면, 사람의 삶에도 번개탄 같은 불쏘시개가 있어 험한 세월의 무게로 허물어져 기력을 잃은 채 헤매이는 사람들의 차가운 시간과 마음들을 데워 일으킬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문득문득 하곤 했었다.

번개탄과 함께한 그해 겨울로부터 32년, 교도관이었으므로 청·장년기 내 삶의 대부분은 교정현장에 머물렀고 또 거기에서 소진되었다. 그곳에서의 겨울은 언제나 일찍와서 오래 머무는 듯 했고, 어쩌면 타다만 연탄처럼 널브러져 있는 수형의 독백과 푸념들은 늘상 을씨년스럽기만 했다.

그러나 부서져 있는 그들의 마음을 부추겨 한 움큼의 희망과 열정이라도 그들의 손에 쥐어주고자 진심어린 땀과 시간을 지난 세월에 담았었다. 또한 떠나는 그들의 쓸쓸해 보이는 등을 토닥여 배웅할 때 마다 인고의 시간들이 오히려 삶의 피땀 어린 내공으로 승화되어 할당받은 각자의 삶에서 격려의 회초리로 작용할 수 있기를 빌어마지 않았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알았던 모든 수형자, 나를 알았던 모든 수형자들 중 그 어느 한 사람에게라도 나라는 존재가 번개탄 같은 뜨거움으로 다가들어 결빙된 그 마음을 데우고 격려할 수 있었는지 자신이 없다.

그런데 꺼진 불도 살려내던 번개탄이 요즈음 들어 멀쩡한 생명을 죽이는 자살도구로 사용되고 있어 황당하기 짝이 없다.

몇몇 연예인들의 번개탄을 이용한 자살사례가 베르테르효과처럼 일반인에게도 만연되는 듯해 사뭇 걱정스럽다. 인생의 겨울은 누구에게나 한번 씩은 찾아오고 또 그 겨울은 마치 자신에게만 오래 머무는 듯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간간히 참기 어려운 일상마저 주어지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얼마나 무미건조한 인생이라 하겠는가.

최선을 다하는 사람, 운명에 끌려가는 게 아니라 스스로의 운명을 끌고 갈 줄 아는 사람, 인생은 그런 사람에게만 주인 노릇을 허락한다고 했다. 더러 이해할 수 없는 일상의 일들로 생각이 무너지고, 옥죄어 오는 슬픔에 마음을 잡기가 힘들 때라도 그 시간과 손을 잡고 인생을 타협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리라. 쓸쓸한 깨달음에도 아픔은 치유될 수 있기 때문이다.

후퇴의 유서를 그 까짓 연기 속에 흘려버리고서야 참으로 비겁하고 허허롭다. 태우고야 말 번개탄이라면 내 마음에 지펴 그 푸른 불길의 뜨거움으로 삶의 열정을 되살릴 일이다.

 

이태희 전 법무부교정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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