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 직전 ‘시골학교’ 유쾌한 반란 도시 아이들 몰려오는 ‘보물 학교’
1년 전 강화 양도초등학교로 전학을 온 6학년 이상권군은 ‘혼자서 하는 법’을 배웠다. 도심 속에서 항상 누군가와 겨루고, 누군가의 가르침대로만 행동하는 게 몸에 배어 있던 이군은 불과 1년여 만에 노는 것도, 공부하는 것도 혼자 결정하게 됐다. 이러한 변화를 가져온 것은 담임교사도, 교장도, 부모님도 아니다. 바로 양도초등학교의 ‘자연과 함께하는 교실’이 그 주인공이다.
지난달 19일 오후 1시께 인천시 강화군 양도초등학교 인근 진강산의 한 계곡. 아직 여름방학이 진행되려면 10여 일 남았지만, 양도초등학교 ‘물빛 계절학교’에 참여한 수십 명의 아이가 물총놀이를 즐겼다. 특이한 게 있다면 아이들 손에는 최신식 플라스틱 물총 대신 동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페트병을 재활용한 물총이 들려 있다.
1시간여 아이들이 저마다 편을 나눠 계곡 위아래를 오가며 신나게 물총놀이를 즐긴 후 이어진 가재 잡는 시간. 조금 전까지도 왁자지껄 한바탕 난리를 피우던 아이들은 어느새 ‘쉿’ 소리와 함께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대고 계곡물 속의 돌을 들추며 가재를 잡았다. 잠시 후 한 아이가 “잡았다”라며 환호성을 지르자 주변으로 몰려든 아이들은 신기한 듯 가재 구경에 열중했다.
양도초교의 계절학교에 참가한 계양초교 1학년 김가별군은 “김치 담그는 것을 집에서도 구경만 했는데 이번에 친구들이랑 처음 해봤다”며 “너무 재밌고 앞으로도 여기 있는 친구들이랑 같이 공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인천시 강화군 양도면 삼흥리 288번지에 있는 양도초등학교는 1908년 설립,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그러나 도서지역에 있는 여느 학교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하나 둘 도시로 떠나면서 학생 수가 점차 줄어 2011년에는 전체 학생 수가 23명에 달했다. 인천시교육청의 폐교 대상인 학생 수 60명 이하, 1면 1교 정책에 따라 매년 폐교가 검토됐고, 2011년에는 인근 조산초등학교와 통합이 논의되기도 했다.
하지만, 2010년 9월 부임한 이석인 교장(54)은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보고 학생 중심의 행복교육 구현에 나서 오히려 도시 학생들이 찾는 학교로 변신에 성공했다. 특성화 프로그램들이 자리를 잡고 입소문을 타면서 전입해 온 학생 수가 지난해 28명, 현재 60명으로 늘었고, 학습 수도 4학급에서 6학급으로 증가하는 등 폐교 대상 학교에서 벗어났다.
가장 인기를 끄는 것은 1년에 4번 ‘풀빛, 물빛, 하늘빛, 눈빛’으로 나눠 진행하는 계절학교 프로그램이다. 수억 원의 예산을 들이지 않고도 인근 2㎞ 내에 있는 서해, 강화갯벌, 진강산, 농촌의 자연 등을 활용해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양도초교만의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계절별로 테마를 구성해 숲 체험, 자연놀이, 농사체험, 전통음식 및 김치 담그기, 천체 관측, 갯벌 체험, 망둥이 잡기, 계곡놀이, 수생식물 관찰 등을 교직원과 외부 강사가 함께 진행한다. 이들 프로그램은 매번 프로그램을 연구하고 보강해 단순히 자연을 체험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연 안에서 함께 자립심을 갖고 공동체로 살아가는 방법을 익힌다.
올해로 계절학교 프로그램이 3년차에 접어들면서 인천 시내뿐만 아니라 서울, 경기도, 멀리서는 부산에서까지 신청해 이제는 참가 희망 학생이 많아 추첨을 통해 선발할 정도다. 특히 한 번 계절학교를 체험한 학생들은 또다시 참가 신청을 하는 등 높은 만족도를 보이고 있으며, 계절학교에 참가했던 학생이 아예 양도초교로 전학 오는 사례도 점차 늘고 있다.
물론 계절학교 프로그램만으로 이런 변화를 가져온 것은 아니다. 양도초교는 학생 중심의 행복교육에 초점을 맞춰 전체 공교육의 틀을 깨지 않는 선에서 색다른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책걸상 없는 1·2학년 교실 운영, 중간놀이시간 운영, 자연과 함께하는 어린이 농부교실, 양도가족 강화 도보 100리 걷기 프로그램, 곤충과 동물 사육 프로그램, 간장, 된장 등 장 담그기 프로그램, 의형제 모임, 학부모 교육 기부, 엄마 품 온종일 돌봄 교실 등 특색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이들 프로그램이 조화를 이루면서 양도초교는 학생들이 좋아하는 학교, 학부모들이 유학 보내고 싶은 학교로 다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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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도초교에 자연형 교육프로그램을 도입한 계기는.
2010년 우연히 양도초교 얘기를 주위에서 듣고 나들이 삼아 한 번 와봤다. 숲 해설사 자격증을 갖고 있어 양도초교의 뛰어난 자연환경이 남다르게 다가왔고, 평소 꿈꾸던 프로그램을 접목시켜보자는 생각으로 초빙형 공모제에 지원하게 됐다.
-그동안 어떠한 변화가 일어났는가.
여전히 연간 학교 운영비가 2억여 원에 불과할 정도로 특별한 돈을 들이진 않았다. 주위에 많은 분이 도와줘 프로그램을 하나 둘 시작할 수 있었고 외부에서 학생들이 전학 오기 시작했다.
1년만 보내보자던 학부모들이 강화도에 일자리를 구하기 시작했고, 몇몇 학부모는 생업 때문에 기러기 생활을 자처하기도 했다. 아이들이 없던 마을에 다시 웃음이 찾아오면서 모두 반기는 분위기다. 지금은 이사 올 집이 없어 대기자가 줄 섰을 정도다.
-일부 학부모는 학력 향상에 대해 걱정할 텐데.
학력도 다른 학교생활과 마찬가지로 지치지 않고 즐기며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학교는 테크닉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므로 특정 진도를 배우는 것보다 스스로 개념을 깨우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10명 안팎으로 학급 인원이 구성되다 보니 개인별·수준별 개별학습이 이뤄지고, 학생별로 학습목표를 정해 이에 맞춰 지도가 이뤄진다. 최근 3년간 기초학력 미달 학생이 단 한 명도 없으며, 모두 보통학력 이상의 성적을 보이고 있다.
박용준기자 yjunsay@kyeonggi.com
사진=양도초등학교•인천시교육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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