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도시]도시재생 ‘부천 재창조’

사람들이 외면한 자투리ㆍ버려진 땅… 그곳에서 공간미학의 싹이 움트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창조’가 중요한 화두다.

상상력과 추진력으로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이 창조지만 쓸모없이 버려진 것들을 고치고 바꿔 새롭게 쓰는 ‘재생’도 창조의 또 다른 모습이다.

부천시는 좁은 땅에 많은 인구가 몰려 있어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할 공간과 자원이 부족하다. 거기에 수십년 넘게 쓰지않아 쓸모가 없어지거나 수명이 다해 버려지는 것들이 하나 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부천시는 그 쓸모없어 지거나 수명이 다한 것을 되살리는 재생에 주목했다. 그리고 재생을 통해 새로운 창조를 만들어 내고 있다.

▲동네 공터가 주차장으로

부천시 소사구 송내동에 사는 김상현씨는 매일 주차문제로 골머리를 앓았지만 최근 집 근처에 새로 생긴 임시주차장 덕분에 걱정을 덜었다. 부천소사경찰서 근처 공터에 생긴 123면의 임시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있는 김씨는 더 이상 주차를 위해 동네를 몇 바퀴 씩 돌 필요가 없어졌다.

부천의 구도심의 주차난은 심각하다. 2013년 현재 부천시에 등록된 차량은 27만여대, 주차면 수는 22만5천여면에 불과해 4만5천여대의 차량은 불법주차를 할 수 밖에 없다.

특히 구도심 지역은 수십년 전에 만들어진 곳으로 주차에 대한 고려없이 길을 닦고 건물을 지었다. 자동차가 생필품이 되어버린 지금 그곳은 주차공간이 없어 매일 주차전쟁을 치르고 있다. 주민들의 생활편의 뿐 아니라 상권 활성화를 위해서도 주차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주차장을 새로 만드는 것 또한 쉬운일은 아니다. 주차장을 새로 만들려면 매입할 땅값을 포함해 지상에는 1대당 3천300만여원, 지하는 7천만여원이 든다.

4만5천대를 세울 주차장을 만들려면 지상으로 조성한다 해도 1조4천850억원이 필요하다. 이는 부천시 1년 전체 예산을 넘는 금액이다.

이에 부천시는 새로운 대안을 찾았다. 바로 동네에 쓰지 않고 노는 땅에 임시주차장을 만드는 것이다. 땅 주인에게는 재산세 감면 등의 혜택을 주는 대신 일정기간 동안 그 땅을 임시주차장으로 만드는 것이다. 땅 주인이 땅을 다른 용도로 쓴다면 언제든지 돌려준다. 그렇게 꾸민 임시주차장이 29곳에 810면이다. 필요한 주차면 수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이정도의 주차장을 새로 꾸밀 때에 비해 329억원을 절감했다.

▲정수장 터가 농업 공원으로

오정구 여월동 여월정수장은 1980년대부터 2001년까지 20여년 동안 부천시민에게 수돗물을 공급하던 곳이다. 도시규모 확대에 따라 까치울정수장이 대체가동을 시작하자 여월정수장은 오랫동안 방치됐다.

부천시는 이곳을 친환경생태농업을 경험할 수 있는 여월농업공원으로 환골탈태 시켰다. 여월농업공원은 기존의 정수장 시설을 다시 활용해 농사체험장, 경관식물 파종원을 만들었고 부들과 창포, 연꽃 등의 수생식물과 미꾸라지, 붕어 등이 함께 사는 생태연못, 피크닉장, 캠핑장을 갖췄다. 총 면적은 5만2천422㎡에 총 사업비는 모두 9억여 원이 들었다.

지난 6월에 발표한 국토교통부의 공원 표준조성비는 1㎡당 8만8천원이다. 만약 여월정수장과 같은 규모의 공원을 이 기준에 맞추어 조성했을 경우 46억여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기존 시설의 재생을 통해 37억원을 아낀 셈이다.

자녀들과 이 곳을 종종 찾는다는 원미구 중동의 임미혜씨는 “아이들이 직접 흙과 식물을 만질 수 있어서 좋다”며 “내년에는 텃밭을 분양받아 가족과 함께 채소를 길러보고 싶다”고 말했다.

▲옛 양묘장 부지가 청보리 밭으로

지난 6월초, 부천시청 민원실 동쪽에 청보리와 해바라기를 심은 청보리밭 경관작물원 ‘보리밭 사잇길’이 문을 열었다. 이 곳은 옛 중동양묘장 부지 9천800㎡에 청보리, 해바라기기 등 관상작물을 심어 조성했다. 청보리 사이에는 조각상도 설치했고, 밭 한 가운데에는 원두막과 벤치 등도 놓았다. 원두막과 벤치에 쓰인 나무는 부천지역 산에서 찾은 고사목이나 간벌목을 재활용해 사회적기업 ‘한울타리’에서 제작했다.

지금은 청보리를 수확한 뒤 함께 심은 해바라기 1만4천여 그루가 시민들을 반긴다. 청보리를 거둔 자리에는 유채나 메밀을 심을 예정이다. 내년 봄이 되면 노란 유채꽃과 하얀 메밀꽃이 이 곳을 가득 채울 것으로 기대된다.

소사구 소사본동의 문성식씨는 “시청 옆에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다. 주말에 사진 동호회 친구들과 멋진 사진을 찍으러 와야겠다”고 말했다.

▲버려진 고속도로 아래에 체육공원과 식물원이

지난 2010년 서울외곽고속도로 중동나들목(IC)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불은 고속도로 하부공간에 불법주차된 탱크로리 유조차에서 시작됐다.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는 1999년 개통 후 오랜기간 도로 아래의 넓은 공간은 화물차들의 불법 주차나 불법 적재물 등으로 주민들에게 불편을 끼쳤다.

부천시는 중동나들목 화재 이후 복구하면서 그 자리에 해그늘생활체육공원과 해그늘음지식물원을 세웠다.

해그늘체육공원은 길이 2.1㎞, 면적 8만3천80㎡의 면적에 족구장을 비롯해 인라인스케이트파크, 테니스장, 배드민턴장, 농구장 등의 생활체육 경기장과 어르신을 위한 게이트볼 그라운드, 골프장과 자연학습장, 문화광장 등 부대시설도 갖췄다. 고속도로 아래여서 분진이나 소음 등의 문제는 경기도보건환경연구원에서 ‘유해성이 없다’는 판정도 받았다. 들어간 예산은 모두 19억원으로 국토부 표준 공원조성 비용으로 따져보면 64억원의 비용을 절감했다.

이와 함께 부천시는 이곳에 해그늘음지식물원도 만들었다. 3천500㎡의 면적에 맥문동, 옥잠화, 비비추 등 음지에서 자라는 식물 72종 10만여 그루를 심었다.

휴일 마다 해그늘체육공원에서 족구를 즐기는 박창규씨(부천시 족구동호회 상동지회장)는 “비나 눈이 와도 실내체육관처럼 운동할 수 있는 것이 이곳의 장점이다. 지형 구조상 바람이 많이 불긴 하지만 비나 눈 걱정없이 운동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버려진 땅에 꽃을 게릴라가드닝

시간당 16㎜의 비가 내린 7월23일 오전 11시.

호미와 삽을 들고 우비를 입은 김여옥·이천배씨(원미구 심곡1동)는 부천시청 옆 상가길에 꽃을 심었다. 이들은 부천시의회 옆 이마로 상가, 부천시청 앞 잔디광장 나무 밑, 시청 어린이집 앞 화단, 부천시청 농구장 주변 등에 토레니아와 팬타스 각 1천200여 그루를 심었다.

이들이 하고 있는 것은 게릴라가드닝(Guerrilla gardening) 이었다. 게릴라 가드닝은 버려졌거나 누구도 돌보지 않는 땅을 가꾸는 일로 그곳을 사용할 법적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실천하기도 한다.

게릴라 가드너는 땅에 작물을 심거나 그 구역을 아름답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춰 식물을 심는다. 이러한 실천은 땅을 땅답게 사용한다는 것에 주목, 토지 소유권에 대한 재인식을 유도함으로써 방치된 땅을 되찾고 그 땅에 새로운 목적을 부여한다.

부천시는 ‘시민과 함께하는 게릴라가드닝-도시농부원정대 출정식’을 지난달 23일 갖고 꽃으로 이마로를 공략하는 게릴라 가드닝을 실시했다. 부천시 가톨릭대 도시농부 동아리 농락(농사짓는 즐거움)회원과 관심이 있는 시민 등 30여명이 참여했다.

부천시는 게릴라 가드닝이 시민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확산되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식재 대상지, 꽃모종 선정, 식재일 등 정보를 공유하는 시민 주도의 자생적이고 자발적인 모임으로 이어져 활성화 되도록 도울 방침이다.

김만수 부천시장은 “낡거나 쓸모없는 것들, 방치된 것들을 고치고 다듬어 새롭게 만드는 재생이 지금 시대에는 창조가 될 수 있다고 본다”며 “무조건 없애고 새로 만드는 것 보다 기존의 것을 잘 다듬고 활용하여 쓸모를 늘려 나가는 시 행정을 펼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부천=김종구기자 hightop@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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