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가고 있는데 한 무리의 어린 초등학생들이 제 앞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 중 몇몇은 낯이 익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자 녀석들 중 한 아이가 저를 알은 체 하더군요. “어, 7시 축구 아저씨다”라고요. 그러자 그 말 뜻을 모르는 다른 초등학생들이 그 아이에게 물어보더군요. “응, 저 아저씨 7시만 되면 아들이랑 광장에 공차러 나오거든, 그래서 우리가 그렇게 부르는 거야, 그런데 아저씨 요즘에는 왜 매일 안 나오세요?”
저는 어느 순간 아파트 아이들에게 7시 축구 아저씨가 되어 있었습니다. 창작촌에 입주를 하기 전에는 거의 매일 저녁 7시 무렵에 아파트 광장에 나가 일곱 살 난 아들과 공을 찼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아들과 주고 받는 정도의 공차기 였습니다. 그러다 아파트 광장에 나와 있는 아이들과 경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어른 한 명에 아이들 다섯일 때도 있고 열 일 때도 있는데 저는 혼자 차고 아이들은 한 팀이 되어 저와 경기를 하곤 했습니다. 광장이라 그리 큰 공간은 아니지만 아이들과 어울려 한바탕 공을 차고나면 몸이 땀으로 흠씬 젖고 맙니다. 그러고 나면 몹시 기분이 좋더군요. 경기가 끝나면 아이들과 어울려 아이스크림 하나씩 물고 앉아 이름도 묻고 제 아들 이름도 가르쳐주면서 조금씩 친해졌습니다.
그런데 축구를 차는 아이들이 남자 아이들만 합류를 하는 게 아닙니다. 여자 아이들도 같이 어울려 차는데 언제부턴가 아이들은 제가 나오기를 기다리더군요. 제가 나타나면 아이들이 우 몰려와서 공을 차자고 합니다. 그러면 저 혼자 대 아이들 여럿이 공을 찹니다.
아들 녀석도 아이들 팀이죠. 어쨌든 저는 즐거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스크림을 사러 가는 길에 한 여자 아이가 자신도 같이 가겠다고 하더군요. 아들을 포함한 다른 아이들은 광장에서 공을 계속해서 차고 있고요. 아무튼 슈퍼까지 왕복 5분 남짓한 거리지만 말없이 가려니 어색해서 여자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늦게 들어가면 아빠나 엄마가 안 혼내? 엄마랑 아빠랑 아홉시 넘어야 와요. 그럼, 넌 저녁 먹었어? 대충요. 그 순간 아이의 현실이 안타깝다는 생각도 했지만 한편으로 제 자신이나 제 아들이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사실도 느꼈습니다. 넉넉하게 돈을 벌지 못하지만 그래도 아들과 매일 그렇게 놀 수 있다는 게 복이었던 거죠. 사실 그 시간에 광장에 나가보면 엄마들은 더러 있지만 아빠들 모습은 본 적이 없습니다.
아이들과 친해지면서 이름도 알게 되었고 어떤 아이는 아빠가 없다는 것도 알았고 또 어떤 아이는 조부모랑만 살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사실들을 하나 둘 알게 되면서 축구를 하면서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습니다. 먹고 사는 일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훗날 아이에게 부모와의 추억이 없다면 후회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맞벌이하는 게 당연한 시대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로 조금 덜 벌면 안될까 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아들 녀석과 동갑내기인 한 아이는 토요일에도 어린이집을 간다고 하더군요. 광장에서 만나 축구를 하면서 알게 된 아이였습니다. 엄마 아빠가 토요일 일요일에도 일을 한다더군요. 그나마 저라도 만나 아이들이 즐겁다면 하는 바람으로 요즘도 공을 찹니다.
오로지 아들 그리고 광장의 아이들과 공을 차기 위해 집으로 가고는 합니다. 아무리 못 차도 일주일에 두 번은 차려고 집에 들어가지요. 힘들겠지만 그 아저씨가 제가 아니라 아이들의 아빠이기를 바라면서 말입니다.
전민식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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