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여행자 나무

한 권의 시집이 있다. 심해의 상징인 듯 푸른 바탕의 표지는 간결해서 알 수 없는 깊이를 예감한다. 겉 뚜껑을 열자 역시 푸른 속지가 보인다. 그 오른쪽 상단에 시인의 친필 사인이 있다. 또박또박 눌러 쓴 시인의 서체를 보면서 한동안 시집 속의 글자들과 대면하지 못했다. 단숨에 읽기엔 저, 환상과 신화의 세계가 너무 아득해서 몇 번의 숨을 고르는 사이 해가 세 번 중천에 떴다 졌다.

세계의 문학 시장에서 시는 이미 사장 된 지 오래다. 손가락 하나면 정보가 쏟아지는 세상에서 무엇 때문에 본질에 심각한 시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고 싶을까. 그러나 목매달아 죽어도 좋을 나무처럼 진정으로 시를 쓰는 시인의 시 쓰기는 치열하고도 준엄하다. 차라리 수도사의 수행처럼 날마다 쓰고 지우는, 아니 살고 죽는 사람의 삶과, 시가 한 줄에서 비명처럼 선연하다. 돈 한 푼 되지 않는 시 쓰기에 시인은 왜 이름을 걸고 무릎을 꺾어서 고행의 사막 길을 마다치 않는 것일까.

시집‘여행자 나무’는 총 51편의 시들로 묶여 있다. 맨 앞장 시인의 자서에는 “무연히 몽유에 드는 밤들이 잦다. 손짓, 발짓, 괴성으로 곁의 한밤들을 구겨놓기 일쑤지만 깨어나 아무 일 없는 것을! 오랫동안 어지러웠던 물음들이 지극히 단순해졌다”로 시작한다. 문득 성경 설화 전도서에 나오는 ‘모든 것들은 지나간다. 기쁨도, 슬픔도’ 가 뇌리를 치고 지나가는 것은 무엇일까. 시집 속에 펼쳐진 시인의 시들은 개인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일상의 신화를 시로 승화한다.

‘여행자 나무’에 수록된 시인의 시 쓰기는 지극히 신화적이면서도 환상적이다. 그 환상은 종종 구름으로 치환되기도 하는데, 구름은 소리와 침묵과 삶과 죽음을 그물처럼 엮어서 슬프도록 아름답다. 특이한 것은 보통 신화적인 시 쓰기란 바깥으로 이야기가 풀어지게 마련이지만, 시인의 시 쓰기는 침묵처럼 안으로, 안으로 끌어들이는 지독한 사색의 자리에 놓여 있다. 개인적인 신화를 환상의 세계로 이끌어 가는 힘. 시인의 몸속으로 발화하는 환상의 세계는 몽유의 세계로 화자를 이끌다가 다시 현실로 되돌리곤 한다.

결국, 시인의 시 쓰기란 치열하게 삶을 살아내는 일. 시인은 “시란 내게 있어서 스스로 생을 점화시킨 불꽃 그 자체였다. 그것을 위하여 헌신하겠다는 열정이 없었다면 그다지 치열하게 열병을 앓아야 할 까닭이 있었을까?”라고 자기 시 쓰기에 대해 이미 정의를 내렸다. 생의 비애조차도 서슴없이 드러내는 육감적인 시 쓰기.

시인은 침묵하고 끝끝내 가담하지 않았던 상처의 내면을 말한다. 살을 입은 인간의 가난과 소외와 오욕칠정까지도 긍정한다. 그리하여 죽음을 바라보는 자세 또한 담담하다. 이런 시 쓰기! 어떤 예술 장르에서도 이루지 못한 인간의 본질에 관한 지독한 탐구가 시 쓰기라 생각하는 것은 너무 지나친 필자의 기우일까.

시력 사십년의 김명인 시인이 열 번째 시집 ‘여행자 나무’를 상재했다.

펼쳐든 여정이라면 누구라도/ 접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여행이란/ 하루에도 몇 번씩 어제가 포개놓은 그늘에 서게 하는 걸까?/ 아직 행려의 계절 끝나지 않았다/ 어디로도 실어 보내지 못한 신생의 그리움 품고 나무의/ 늙은 가지에 앉아/ 몸통뿐인 새가 울고 있다-‘여행자 나무’부분

타들어가는 침묵과 불판 위에 엎질러 버리는 정열로 김명인 시인의 시는 매일 싱싱하다. 그러나 선생의 시는 어쩌면 아직 단 한 줄도 시작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늙지 않는 짐승! 여행자 나무의 오랜 건강! 과 건필! 을 기원한다.

손현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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