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없는 서민도 민사사건 변호사 선임할 수 있어야

우리나라는 형사사건 피고인에게 국가가 나서서 변호인을 선임하여 주는 ‘국선변호인’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엄숙한 법정 분위기와 고압적인 판ㆍ검사에 짓눌려 있는 피고인들은 심리적 열등감에 빠지기 쉽다.

변호인은 검사의 기소가 잘못되었다고 법리를 주장하기도 하지만 피고인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하다. 만약 사선 변호인을 선임할 수 없는 자라면 국가가 나서서 변호인을 선임해주어야 한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형사재판제도가 갖추어진 문명국이라면 어디나 국선변호인제도를 두고 있다.

민사사건에서도 구조상 변호사의 조력은 꼭 필요하다. 민사 소송은 ‘변론주의’ 원칙이 적용되기 때문에 변호사로부터 올바른 법적 조력을 받지 못하면 적시에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해 억울하게 패소하는 경우가 생길 수밖에 없다. 설득력 있는 주장을 하고 그에 부합되는 증거를 제출해야 판사가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다.

변호사가 없는 경우 당사자들은 법률 시스템과 변론주의 원칙을 이해하지 못해 필요한 주장과 증거를 현출시키지 못하거나 오히려 상호 모순되거나 관련없는 주장과 자료를 제시하는 바람에 패소하기도 한다.

분쟁에 대한 시시비비를 제대로 가려내어 국민이 납득하는 판결을 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법치주의 확산, 사법신뢰 확립에 필수적이다. 그러나 현재 전국적으로 약 2천500여 명의 법관들이 1년 동안 평균 약 1천 건의 본안사건을 처리하고, 대법관은 주말 포함해서 하루 평균 6건 이상 처리해야 하는 등 법관의 업무강도가 높다.

현 상황에서 법관에게 모든 사건을 다 일일이 정리하고 당사자들을 납득시켜 가면서 판결하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변론주의 시스템과 맞지도 않을뿐더러 사법절차의 효율적인 운용이라는 공익적 측면, 사법처리의 신속성 확보에도 배치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민사사건에서도 형사사건 국선변호인처럼 변호사가 일정 사건에 대하여는 반드시 변론에 참여하도록 하면 어떨까. 법관과 동일한 자격을 갖추고 있는 법률전문가인 변호사가 당사자와 함께 사건을 정리하고, 적절한 법적 조치를 적시에 취하도록 조력하도록 하자.

그렇다고 경제적 부담 때문에 법률서비스에 접근하지 못하는 서민들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문제는 국가와 사회가 일정부분 고통을 분담해주어야 한다. 대한변호사협회 역시 변호사 변론주의 확대와 더불어 법률구조재원을 확충함으로써 서민들의 사법 접근권(access to justice)을 실질적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본다. 사법신뢰 확립, 사법복지 실현을 위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위철환 대한변호사협회 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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