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공직사회의 갑과 을

근래에 갑, 을 논쟁이 뜨겁다. 사회 곳곳에 갑과 을이 존재하고 약자에 대한 횡포로 숨죽이며 사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에 새삼 나 자신도 되돌아보게 된다.

공직사회에도 갑과 을이 존재할까? 행정을 집행하는 공직자와 수혜를 받는 지역주민과의 관계에서 과연 누가 갑일까? 행정을 집행하고 이를 감시하는 공직자와 의원들과의 관계에서는 과연 누가 갑이고 을일까?

약 한 달여 전에 지역주민들의 민원을 접했다. 남양주시 조안면과 양평군 양수리를 연결하는 양수대교 재가설 공사 구간에 주민들이 두 가지 민원을 제기한 것이다. 주민과 남양주시 관계자로부터 설명을 들은 후 현장을 방문했다. 며칠 뒤 담당 주무관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현장에서 설명하겠다는 것이다. 나는 현장을 잘 알고 있던 터라 열심히 설명했다. 그러나 주무관의 입장은 달랐다.

첫째, 장마철에 배수가 안 되어 동네에 물난리가 나는 민원이었다. 여러 각도로 설명했지만 결론은 남양주에서 먼저 해결해야 될 일이라는 것이다. 둘째, 주민들의 요구에 통수로를 찾아봤지만 못 찾았고, 약 1년여 수질 검사를 해 봤으나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수질문제니까 팔당수질개선본부와 협의해야겠다는 것이다.

나는 “누가 어느 부서에서 해결하든 민원인들은 잘 모른다. 다만, 경기도 건설본부 사업구간이니 건설본부에 민원을 제기하는 것이고 사업이 마무리되기 전에 해결해달라는 것”이라고 정리하고 자리를 떴다.

며칠 후 관계자들과 다시 자리를 같이했다. 본부장의 첫 마디가 가슴을 정곡으로 찔렀다. “배수로는 왜 우리가 해. 남양주에서 해야지. 통수로는 수질문제니까 팔당본부에서 해야 되고 내가 팔당본부장을 만나고 왔어.” 난 순간 머리가 쭈뼛 섰으나 열심히 설명했다. 다시 돌아오는 말 “남양주 왜 이래, 예산을 잡아놓고 한다고 해야지. 남양주 참 문제야, 담당자 들어오라고 해” 수차례 남양주에 대한 막말에 “국장님 나도 도의원이지만 남양주시민의 한 사람입니다. 남양주 욕 그만하시죠.”

이번에는 “참 업자같이 말을 하네”라고 했다. 천장을 쳐다봤다. 주민들 얼굴이 떠올랐다. ‘그래 참자. 혹 의원이 잘못해서 민원 해결도 못하고 손해라도 가면 어떡하나, 나는 지금 을이다.’ 뾰족한 대책 없이 대화가 끝났다. 융ㆍ복합행정? 원스톱 민원처리? 최우선 민원 해결? 공허한 많은 용어가 떠올랐다.

지방의원 11년 만에 느끼는 비애는 이루 설명할 길이 없다. ‘냉정하자. 내가 바보가 되면 어떤가, 어떻게든 민원 해결이 우선이고 민원 앞에 나는 늘 을이니까’ 마음을 달래고 달랬다. 지금껏 갑으로 착각하고 살아왔던 건 아닌지.

이의용 경기도의원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