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슬픈 사과

얼마 전 좀 슬픈 기사 하나를 읽은 일이 있습니다. 훈육의 차원에서 한 고등학생에게 매를 들었던 선생님이 다른 아이들 보는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아이에게 사과를 했다는 기사였습니다. 물론 매를 맞은 아이의 부모가 지인들과 함께 학교에 나타나 난동을 부리며 선생님에게 사과를 요구해서 생긴 일이었습니다. 사실 선생님의 권위가 바닥 난 게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 아이만 귀한 줄 아는 이런 어른들이 많다는 건 분명 슬픈 일입니다.

하루는 아내가 속상한 일을 겪었다며 이야기를 나눈 일이 있었습니다. 일곱 살 짜리 아이에게 정식으로 사과를 한 일이 생겼던 겁니다. 아이들끼리 어울려 놀다 노래를 우습게 하던 아이를 보고 웃었는데 아이가 울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미소 지으며 놀린 게 아니라고 사과를 했음에도 아이의 부모가 정색을 하고 나서서 아이에게 정식으로 사과하라는 말을 했다는 겁니다.

어쩌겠습니까? 사과를 했겠죠. 물론 어른이 잘못을 했다면 상대가 누구라도 분명 사과를 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상황이나 아이의 격에 어울리는 사과가 아니었음에도 그런 걸 요구했던 것이죠. 안타깝지만 사과를 요구했던 아이 엄마는 주변의 아이들이나 엄마들의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아이만 귀했던 것이었습니다.

진심으로 사과를 한다는 일, 분명 필요한 일입니다. 그리고 사과를 한다는 건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는 훌륭한 일임에도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 사과가 강압적인 사과이며 격에 어울리지 않는 사과라면 그 사과는 공염불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아주 오래 전, 어머니가 한 공장에서 인부들의 밥을 해주시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인부들 중에 유독 밥을 두고 까탈스럽게 굴던 인부가 있었지요. 어머니가 해준 밥과 찬이 입에 맞지 않는다며 식당 앞에 자리를 펴고 앉아 직접 요리를 해 먹는 식으로 시위를 하기도 했고 어쩌다 밥을 먹게 되면 밥이 질다거나 간이 싱겁다고 투덜거리는 등 하루도 그냥 맘 편하게 넘어간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아마 7년 가까이 어머니는 그 인부 때문에 속앓이를 하시며 지내셨지요. 그러던 어느 날 그 인부가 교통사고를 크게 당해 부인과 함께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병원이 먼 곳에 있어 제가 어머니를 모시고 병문안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날 그 인부가 어머니 손을 잡고 그 동안 자신이 괴롭혀서 죄송했다며 눈물을 흘리더군요. 이런 게 진짜 사과인 겁니다. 사과를 하거나 받기 전후의 과정을 잘 헤아려야겠지만 그래도 사과는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으면 그 사과는 슬프기만 할 뿐입니다. 살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저지르는 실수들이 많습니다. 사과하자니 애매하고 안하자니 그 역시 껄끄러운 일들, 있을 겁니다. 그런 일들 먼저 나서서 사과하세요, 진심으로. 그러면 그걸 주변의 모든 아이들이, 어른들이 보고 배웁니다.

일의 잘잘못을 바로 잡아주려던 법원이 선생님에게 무릎 꿇게 만들었던 그 부모에게 좋은 제안을 했더군요. 선생님을 찾아가 무릎을 꿇고 사과를 한 후에 죄에 대해 선고를 하겠다고요. 법원의 제안을 받아 사과를 하겠지만 그 부모가 진심으로 선생님에게 사과를 할 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런 지경까지 온 건 슬픈 일이지만 그래도 그릇됨을 바로 잡으려는 노력이 이 사회에 아직 건전하게 존재한다는 건 기쁜 일입니다. 혹시 누군가에게 잘못하신 일이 있나요? 그럼 먼저 진심으로 사과해 보세요. 그래야 살 맛 나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

전민식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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