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북한은 남북회담을 한국 측 수석대표가 장관이 아니라는 이유로 회담 전날 무산시켰다. 그 이유로 한국 대표단의 격(格)을 놓고 벌어진 기싸움 때문이라거나, 북한이 회담 개최에 진정성이 없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북한은 남북회담을 절실히 원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 점은 북한이 현재 처한 상태를 보면 알 수 있다. 한ㆍ미ㆍ중의 ‘북핵 불인정 원칙’에 따라 4차 핵실험을 할 경우 북한의 명줄을 쥐고 있는 중국의 대응은 지금보다 훨씬 더 강경할 것이다. 북한체제가 붕괴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또 한국과 미국에 핵전쟁 위협을 하였으나 한국 국민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북한은 이번 회담을 무산시켰을까? ‘민족대단결’을 강조하는 7ㆍ4 공동성명과 6ㆍ15선언 공동기념은 유엔제재를 우회하는 좋은 방법이다. 설사 한국정부가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북한은 그 정당성을 강하게 주장할 필요가 있다. 7ㆍ4 공동성명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일성과의 합의였고, 2002년 박근혜 대통령은 평양방문에서 7ㆍ4 남북공동성명과 6ㆍ15공동선언 이행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공식적으로 남북관계를 관장하는 류길재 장관이 이런 논리를 빠져나갈 길은 좁다. 반면에 차관이 한국대표로 나왔을 경우 그는 이 문제는 자신이 결정할 수 없다고 한 발 뺄 수 있다. 북한은 이번 남북회담을 버리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계산했을 것이다.
다른 한편 개성공단 정상화나 금강산 관광재개는 한국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북한은 보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지금 남북통신선이 끊겼더라도 멀지 않은 장래에 ‘남한기업들을 위해’ 북한이 실무회담을 열자고 제의해 올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북한이 두 번에 걸쳐서 회담을 제의하였는데 한국이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합의를 거부할 경우 국내외 여론이 나빠질 것을 북한은 기대할 것이다. 이제 한국 정부는 더 넓은 시야에서 더 정확하게 남북회담이라는 게임을 보아야 할 것이다.
홍성기 아주대 기초교육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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